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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ul 01. 2024

꿈꾸는 예술가 이종헌 선생을 만나다.

제2회 도계전 '끝남과 시작', 오는 17일까지

변방도시에 피어나는 문화예술의 꿈, 미래를 만났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폐교 운동장에 도착하자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워낙 낯가리는 성격이라 얼른 짐만 챙겼다. 시간을 보니 행사 30분 전이다. 리허설도 못 해보고 바로 공연할 판이라 마음만 더 급해졌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건물 안에 드니 이종헌 선생이 아이 같은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선생의 넉넉한 미소를 받고서야 부담감으로 쫀쫀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와서 보니 행사 규모가 제법 컸다. 삼척 도계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큰 행사를 거의 혼자 힘으로 기획하고 준비했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선생의 모습을 보니 누가 저 양반을 그 기품 있는 옻칠 달항아리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로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헌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2017년경이다. 당시 서울시청 갤러리에서 열린 '불휘 기픈 나무에 걸린 달', '새미 기픈 물에 비친 달'이라는 주제의 '달항아리' 전시회 때였다. 후배의 소개로 그때 처음 인사를 나눴고 전시회 작품 설치를 조금 도와줬었다. 그 작은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선생과는 끊길 인연은 아닌가 보다.  

▲ 이종헌 서울시청 갤러리 전시회 2017년 서울시청 갤러리 전시회 포스터

 이종헌 선생은 원래 불교미술을 전공한 화가로 채색화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한다. 한국회화의 시원을 찾아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던 중, 7세기 그려진 옻칠 벽화가 오늘날까지 보존된 점에 큰 감명을 받아 옻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선생은 중국을 비롯한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옻칠 연구와 옻칠작품 작업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옻칠 달항아리 작품들은 옻칠을 재해석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선생을 대표하는 작품세계가 되었다. 선생은 특별히 달항아리 옻칠작품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한 언론매체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달항아리는 과거 백성들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형태와 색이었다. 반면 옻은 지배계급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귀한 소재였다. 달항아리가 담고 있는 서민의 소박한 정서에 옻칠을 더해 예술적 완결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며,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다." -(2019년 7월 17일 법보신문 인터뷰)

이 선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과 예술관을 읽을 수 있다.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

▲ 이종헌 선생 옻칠 달항아리 작품

지난 3월 말 이종헌 선생을 처음 소개해 준 후배 결혼식이 있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선생을 다시 만났다. 그때 지나가는 말로 도계전 행사와 공연에 대해 넌지시 말하길래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술김에 승낙하고 말았다. 결혼식 일주일 후쯤 선생에게 카톡이 왔다.


"선생님 이종헌입니다. 작년 제1회 도계전 반응이 좋아 올해 제2회 도계 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38명의 작가가 참가했고, 올해는 60여 명의 작가들이 참가할 것 같습니다. 전시는 폐교가 된 소달중학교에서 1달간 전시를 합니다. (...중략...) 오프닝에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의 멋진 춤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프닝에서 약 10분~15분 정도 축하공연을 해달라는 거였다. 난감했지만 뱉은 말이 있으니, 거절도 못 하였다. 부담감으로 인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삼척 도계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다. 더군다나 춤을 부탁한 이 선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가끔 후배가 전해줘서 2년 전쯤 원주에서 삼척 도계로 이사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몰랐었다. 카톡 대화 뒤 선생은 자료들을 보내왔다. 그제야 비로소 선생이 하고자 하는 일과 삼척 도계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 내년이면 폐광 될 도계 탄광 폐광이 되면 도계 광부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삼척 도계는 오지에 가깝다. 한때 탄광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석탄산업의 몰락과 그나마 있던 탄광도 내년이면 폐광될 예정이라 이곳은 점점 쇠락하는 도시가 되었다.

 

실제 둘러보니 도계의 겉모습은 한적한 여느 지방 소도시와 비슷했으나, 탄광도시를 대변하듯 광부들이 거주했던 적막한 사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쇠락하는 지역 도계에 들어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이 바로 이종헌 선생이다. 제1회 도계전은 선생의 그러한 꿈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었다. 제1회 도계전 도록 서문에는 선생이 도계를 바라보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강원도 삼척 도계를 검색하다 보면 마지막 석탄 생산지로 탄광과 관련된 것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도계는 오랜 역사적 사실들이 겹겹이 누적된 유서 깊고 삶이 농축된 땅이다. 누군가에게는 유년 시절 따뜻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고향이기도 하고 70~80년대 경제성장의 현장에 있었던 누군가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막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름다움 이면에 생활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야 했고, 또 예기치 않은 진폐증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서 보상도 없이 살아온 아픈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제1회 도계전 도록 서문 발췌)


이종헌 선생은 작년 1회 도계전(성스러운 땅, 생명의 대지)에 이어 올해에도 제2회 도계전(끝남과 시작, 6월17일~7월 17일)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자기 작품 전시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람료를 받는 것도 아닌데 홀로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선생의 가슴 속에 활활타는 꿈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삼척 도계를 다녀오고 나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하나 썼더니 이종헌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관련 기사]

내년이면 끝... 여름휴가 일정으로 추천합니다 https://omn.kr/294cn 

도시 전체가 박물관, 삼척 도계로 오세요 https://omn.kr/2967k

"예술은 변방에서도 가능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선생님이 불을 질렀습니다. 여기 분들은 선생님을 모두 기억할 겁니다. 그제 기사 보고 도계 분들이 여럿 오셨습니다. 너무들 좋아하더군요. 최고로 적절한 예술이었습니다. 삼척까지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삼척 도계에 다양한 문화예술이 자유롭게 숨 쉬는 한국의 양산박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게 제 꿈입니다. 없는 놈한테 서울은 안 돼도, 변방은 예술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도계에 문화예술가들의 양산박(梁山泊: 중국 산동성에 있는 지명으로, 호걸들이 모여든 곳)을 만들겠다는 선생의 말이 어설픈 춤꾼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작은 몸짓이었지만 나름 춤을 준비한 마음을 읽어준 것도 고마웠다.


그저 진심을 전하면 족하다. 

사실 처음 공연을 기획하면서는 난감했다. 불과 10여 분 공연이라지만 뜻깊은 자리에 내 어설픈 몸짓으로 그 행사를 망치지 않을지 큰 부담이었다. 삼척 도계를 가본 것도 아니고 그곳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큰 걱정거리였다. 춤 동무에게 하소연했더니 그저 도계에 대한 진심을 전하면 족하니 가서 축하해주고 오라는 말이 힘이 되었다.


이종헌 선생이 보내준 자료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이 선생의 꿈과 삼척 도계에 대한 애정이 잔잔하게 전해졌다. 또 여러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하다 보니 잘 몰랐던 탄광도시 삼척 도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곳의 번영과 쇠락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해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저 그 마음을 전하는 춤을 추자고 마음먹었다.춤 제목을 (삼척 도계 끝남과 시작을 축하하며) '춤을 빚다'로 정한 이유다. 미천한 재주를 마음으로 받아 준 그날 춤 자리에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춤을 빚다-끝남과 시작 제2회 도계전 오픈 공연: 춤을 빚다-끝남과 시작/ 전병호, 한명화

겨우 1박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도계는 참으로 좋았다. 가기 전 그저 산골 마을 하나쯤으로 생각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갔다 오니 이종헌 선생의 꿈과 삼척의 역사, 도계의 미래를 만나고 온 느낌이라 좋은 마음이 계속 올라온다. 좋은 여행지가 별 곳인가? 돌아온 뒤에도 좋은 마음이 계속 솟아나 또다시 가고 싶은 곳이라면 좋은 여행지 아니겠는가?


도계를 응원한다. 도계에 문화예술가들의 양산박을 꿈꾸는 이종헌 선생을 응원한다. 그리고 올여름 도계로의 여행에 초대한다. 끝으로 이번 제2회 도계전 도록 서문에 실려 있는 선생의 꿈과 도계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초대의 글을 전하며 문을 닫는다.


'문화예술을 지향하는 우리들은 이곳에 새로운 씨앗을 뿌렸고, 자유로운 예술의 꽃이 피어나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제1회 도계전을 통해 이제 그 씨앗이 뿌려진 이곳에 [제2회 도계전-끝남과 시작]으로 그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의 성원과 관심 바랍니다.' (제2회 도계전 도록 서문 발췌) 

▲ 춤을 빚다 제2회 도계전 오픈공연: 춤을 빚다-끝남과 시작


[도계로의 초대]

1. 제2회 도계展 -끝남과 시작: 누구나 무료 관람 가능.

장소: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소달중학교(폐교)

기간: 2024년 6월 17일~7월 17일

문의: 삼척 도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033-541-7723

주최·주관:옻뜰(ott ddeul), 사)한국옻칠협회


2. 도계전을 보고 1박 할 곳 추천(펜션 또는 캠핑 가능): 도계 깊은 골짜기 폐교를 개조해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펜션이 있다. 이곳에서는 캠핑도 할 수 있다. 들러 보길 권한다.

장소: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점리길 370~ 41 도계초등학교 점리분교(폐교) 점리 캠핑장 펜션(신주 빚는 마을, 점리마을회관 뒤편)

문의: 하늘 아래 신주 빚는 마을 체험장 070-7761-6119 / 010-8879-6119  


▲ 제2회 도계전-끝남과 시작 제2회 도계전 포스터

오마이 뉴스 기사:https://omn.kr/298q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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