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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Nov 18. 2024

갇짜니 선생

내 동무 호를 짓다.

“같잖아서”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어떤 대상에 대해 화가 단단히 난 상태일 게다. 깜냥도 되지 않는 것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볼 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 말이 툭 튀어나온다.

“참나 같잖아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같잖다’[발음:갇짠타], 형용사 1. 하는 짓이나 꼴이 제격에 맞지 않고 눈꼴사납다. 2. 말하거나 생각할 거리도 못 되다. 


그러니까 이 말은 사람이나 사물 또는 어떤 현상에 대해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며 툭 내뱉는 말이다. 이런 같잖은 말을 들으며 자랐던 어린이가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생김새도 그렇고 이래저래 하는 짓들이 시원찮았다고 말한다. 그의 성들은 그런 그를 ‘갇짜니(같잖니)’라고 불렀다 한다. 


‘같잖다’는 ‘같지 않다’의 줄임 말이다. 형용사 ‘같다=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다’와 앞 말을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동사 ‘않다’가 붙은 말이다. ‘같다’라는 앞의 말은 긍정의 말이고 뒤에 붙은 ‘않다’는 부정의 말이니 긍정과 부정이 합쳐진 오묘한 말이다. 이처럼 극과 극이 만나 한단어가  만들어졌으니 이 말은 쓰임에 따라 극과 극의 의미를 갖는다. 


‘같잖다’는 어떤 대상(사람, 사물, 현상)과 같지 않다는 말이니 무조건적인 반대 의미다. 이 말에는 논리적, 합리적인 판단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배척이고 조롱이고 희롱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설령 네가 옳다고 해도 나는 너와 같지 않으니 너나 잘하라는 조롱이다. 한마디로 “그려 잘났어. 니 똥 굵다” 이 말이다.


내 동무 박시도 선생은 농판이라는 별명(호)을 가지고 있다. 농판은 원래 전라도 방언으로 ‘실없고 장난스러운 기미가 섞인 행동거지.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말을 가져다 판을 희롱하는 弄판(弄 희롱할 롱-농, 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니 참 좋은 동무를 둔 복 받은 사람이다. 호(별명)는 들었을 때 그 사람이 딱 떠올라야 잘 지은 이름이다. 이 호를 처음 들었을 때 박시도 선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도 동무로서 별명을 하나 지어 주고 싶었다. 


엊그제 통화 중에 어릴 적 자기 별명이 ‘갇짜니(같잖니)’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농판이라는 호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갇짜니가 세상을 같잖게 보며 희롱하는 사람이니 농판이나 가짜니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떡잎부터 그의 성정을 알아보고 ‘갇짜니(같잖니)’라 불렀다던 성들의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지금 그 같잖던 어린이가 잘 자라 같잖지 않은 요정으로 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는 현실에서도 손해 보는 일이 매 일상이다. 왜 그랬냐고 구박을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는 오염된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그를 차요정이라 부른다. 그는 문득 세상을 초연한 사람 같다가도 갑자기 아이 같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내가 뭘 알간디”라며 자신을 같잖은 사람으로 낮추다 가도 가끔 고뇌에 찬 동무들을 보면 주옥같은 말들을 방언처럼 쏟아낸다. 그가 가끔 지나가면서 툭 던진 한마디 속에는 진주가 가득하다. 정작 나중에 물어보면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라며 반문한다. 그 툭 던진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은 사람이 바로 나다. 국수장사 망하고 시도 때도 없이 공황선생이 나를 괴롭힐 때이다.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었는데 어느 숲길을 걸으며 문득 툭 던진 이 말에 나는 큰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 

‘병호~ 다 아퍼, 뭘 자꾸 하려고 하지 마” 


그의 말속에는 세상에 대한 희롱과 조롱이 배어 있다. 자신을 낮추어 같잖다고 하지만 같잖은 세상을 희롱하고 조롱한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같잖은 사람’이 되어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세상을 가진 ‘같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호로 ‘갇짜니(같잖니)’ 만큼 좋은 이름이 없다.


안 그려유? 갇짜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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