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란 무엇인가? 7
낙엽을 보다 문득 내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딴따라, 광대, 춤꾼, 작가, 역마살 내 인생과 연관된 단어들이다. 부끄럼 많고 말 잘 듣던 순했던 어린이와 잘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이다. 어찌하여 나는 이렇게 흘러왔는가?
겉으로는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다. 첫 직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남들처럼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집도 마련하고 막연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왔다. 하지만 들여다보니 내면의 나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딴따라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학교 지하 풍물패 방은 내 아지트였고 선배들을 따라 여러 굿판을 기웃거렸다. 여름 방학이면 전라도 땅으로 내려가 이름난 선생들에게 풍물굿을 배웠다. 하지만 험악했던 군부독재 시절인지라 세상의 변혁에 더 에너지를 썼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옮겨가며 10여 년 만에 졸업을 하고 어렵게 취직을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사내 풍물패를 만들었었고, 어떤 팔자인지 삼십 대 후반에는 갑자기 글쓰기에 빠져 들었으며, 가끔 시인지 낙서인지 모를 글들을 밤새 끄적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설픈 글재주로 몇 권의 책을 출간하며 작가 행세까지 했다. 지천명의 나이에 갑자기 춤이 나에게 들었다. 돌고 돌아 다시 이 판으로 왔구나 싶었다. 그때서야 내 속에 제사장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딴따라판 주변을 어슬렁거렸던 이유였다.
제사장이란 무엇인가? 그 먼 옛날 나약했던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생존전략으로 집단생활을 택했다. 집단 내에서 특별한 촉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고 그들은 천재지변을 예측하고 아픈 이들의 영혼을 달래며 부족을 보호했다. 제사장들이다. 그들은 신과 인간, 하늘과 땅 사이의 정보 전달자이자 영혼의 치유자였다. 그들은 미래의 예언자로서 부족 운명을 책임지는 총책임자였다. 실제로 고대유물 중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검의 주인은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의 피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떤 후예들은 여전히 영매로서 주술사, 예언자, 무당으로 살아가고 또 어떤 후예들은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 예술가들은 제사장이 그랬듯 하늘과 땅 사이의 정보전달자, 집단의 치유자로서 영감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화가, 가수, 배우, 춤꾼, 시인, 글쟁이 등을 업으로 택했다. 광기, 똘끼로 꽉 찬 예술혼을 접해보면 그들이 제사장 후예임을 절로 알게 된다.
나는 제사장의 후예다. 내 핏속에는 제사장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이것을 확신하게 된 것은 멀리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이슥쿨 호수에서였다. 숙소로 정한 유르트에 짐을 풀자마자 알 수 없는 아픔이 시작되었다. 저녁 내내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고통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골반이 뒤틀리고 다리가 마비되었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덜덜 떨며 유르트에 누워 유목민 양털 담요를 여러 겹 덮고 나서야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새벽녘 눈이 떠졌다. 호숫가에 섰다.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출렁이던 호수는 잔잔한 바다가 되어 맑은 별빛을 받아 내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먼 옛날 제사장들과 함께했던 이곳 호수의 정령들에게 신고식을 치른 것이구나’
무슨 선무당의 헛소리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느꼈던 뼛속을 찌르는 엄청난 고통은 과학이나 의학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차를 오래 타 그런 것이라면 같은 자세로 함께 왔는데 나만 그럴 리가 없고, 밤새 끙끙 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고통이 사라질 수 없다. 호수의 정령들이 내게 들었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제사장 후예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춤을 만난 것은 운명이고 필연이다. 춤을 추고 나서야 내 속에 든 원초적인 나를 만나게 되었고, 그 근원 속에 들어있는 진짜 내 자아, 제사장 후예의 운명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나는 이런 내 운명을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니체도 말하지 않았던가?
‘아모르파티(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