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부터 연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허스토리]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특히 현재까지 고통을 받아온 여성들의 삶, 그중에서도 일본과의 재판에 관란 이야기이다. 지금은 모두 할머니가 되신 소녀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일본군이 전쟁을 하던 당시부터 현재까지 사회적 약자이던 한국의 여성에 대해 각별한 응원과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된다.
피해자로서의 삶을, 그들이 살아온 그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픔을 안고 살다가 어떤 일에 다시 고통받고 어떤 말에 상처받는지, 타인은 넘겨짚을 뿐이다. 우리가 무심히 주워 담는 말들이 누군가의 삶을 흔들어 버리거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적으로 착취당한 이 여성들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미로, 할머니들이 그 단어를 들었을 때 2차가해의 느낌을 받는 등 고통받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를 분영히 하는 단어 하나를 선정했다. 그 단어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이다.
예전에, 한 편의 만화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환경미화원을 보며 자녀에게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돼"라고 말하는 어른과 "너 공부해서 저런 분들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야 해"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대조적으로 그린 만화였다.
만화 하단의 댓글창에는 각 아이들의 엄마로 추측되는 두 어른이 모두 이상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나, 모두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비하를 깔고 있으며, 자녀의 미래에 대한 압력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진다고 해서, 환경미화원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어떤 시혜를 베풀 수 있거나 베풀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만화를 통해, 환경미화원의 사회적인 입지나 인권도 중요하게 생각해 볼 문제지만, '대체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왜 어른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 하고, 무슨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살기 좋도록 세상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공부나 직업과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역시 학생과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문제로 접근해 본다면, 이해가 수월할 것이다.
만화의 예와는 조금 다르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는 딸 혜수(이설)를 다그치던 정숙(김희애, 문정숙 역)은 TV에 나오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관련된 뉴스를 배경으로, "너 나이 때 까딱 잘못하면, 저 할머니처럼 되는 거야"와 같은 말을 했다. 그 말 한마디로 진 빚 때문일까, 부산의 여행사 사장으로서 멋지게 성공한 정숙은, 자신의 삶을 이후 점차 바꾸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영화 [허스토리]는 바로 그 고단한 과정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정숙과 딸 혜수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나오는 TV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순간, 집에는 모녀 이외에 또 한 명의 사람, 할매라고 부르는 도우미 아주머니인 정길(김해숙)이 있었다. 모녀의 대화를 들은 정길은 "문 사장 참 무서운 사람이네"라는 말 한마디와 이제 일 못 나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더 이상 정숙의 집에 일을 나오지 않기로 한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이 할머니들은 잘못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있듯 가해자는 분명히 존재하며,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일본군이 가해자임이 명백하다.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 선량한 사람인 군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이러한 군인들 역시 사회와 시스템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도 희생되지 않은 좋은 전쟁, 착한 전쟁은 없겠지만, 세상 가장 선량한 군인들이 훌륭한 명목의 전쟁을 하는 중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성적인 만족을 위해 타인의 육체적, 정신적 희생을 요구하거나 착취해서는 안된다는 점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권 감수성과 젠더 감수성이 필요한 지점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심지어 대대적이고 공공연하게 전쟁 중의 일본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국가적 시스템을 이용해, 여성의 성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약탈한 사건이다. 할머니들은 당연히 사과받아야 하고 보상받아야 하며, 이때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인생 전반에 걸쳐져 왔기에 과연 치유가 가능하긴 할지 알 수 조차 없다. 게다가 영화 [허스토리]에서처럼 이 사안이 처음 공론화되고 관부재판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한국 내에서의 사회적 인식조차 곱지 않았고 2차가해로 받는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계속해서 미루어지고 있지만, 극중에 나오는 정숙 등처럼 할머니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관부재판에서는 작은 성취를 이루었고, 현재까지 우리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꽃그림을 활용한 상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기업들도 나서고 있으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이나 보살핌, 배려 등도 더 필요할 것이다.
극 중에서는 여성들의 연대와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 민규동 감독은 이 영화를 아주 오랫동안 계획하고 만들어냈다고 한다. [허스토리]에는 김해숙, 김희애와 같은 대배우들, 그리고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참신하게 어우러져 있다. 배우 김희애씨는 여성들간의 워맨스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연기했으며, 배우 김해숙씨는 일본군 '위안부'의 연기를 하는 동안 할머니들의 고통의 크기에 눌려 우울증이 왔다고 한다. 이외에 배우 예수정씨, 문숙씨, 이용녀씨, 박선영씨가 열연했다. 정숙과 함께 관부재판의 중심에서 힘이 되어주던 변호사 이상일 역은 영화 [박열] 등에서 열연한 김준한 배우가, 수요 집회에 나가 발언을 하는 딸 혜수 역은 이설 배우가 맡았다.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제공된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