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자전거 여행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새벽에 잠이 안 와 책을 읽다가 잤더니 아침 해를 보겠다던 굳은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7시 반까지 자버렸다. 어차피 늦은 거란 생각에 그냥 바로 아침을 먹었다. 해돋이와 함께 선한 목자 교회를 보려 했는데 아쉽다.
아침을 먹고 짐 정리를 했다. 부지런히 서둘렀더니 9시 반이 되기 전 길을 나섰다. 테카포 호수를 벗어나면서 한 번 더 교회 쪽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갈까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섰다. 조금씩의 아쉬움을 남기자. 마음이 충족되면 아마 이 여행이 그리워지지 않을 것 같다.
푸카키 호수에서 데카포 호수로 올 때의 지루함과는 다르게 데카포로 부터 제럴딘으로 가는 길은 꽤나 다채로운 거리였다. 더욱이 황량한 갈색 동산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푸르른 나무들도 보이기에 심심치 않게 달릴 수 있었다. 데카포를 지나고 나서는 대체로 다운힐이다. 오늘 하루 90km를 달려야 하는데 다운힐이 많아 그리 무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Fairilie까지 무난한 속도로 도착했다. 중간에 동양인 세명이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을 봤다. 매번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나면 반갑다.
12시 전에 40km 이상 밟으려 했는데 다행히 계획대로 무사히 fairilie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왼쪽 페달이 마을에 거의 다 도착해서 또 빠져버렸다.
마을에서 가까운 카페로 가서 모카치노를 시키고 길거리 벤치에 앉아 커피와 함께 빵을 먹었다. 빵을 먹으며 마을을 둘러본다. 토요일이라 피크닉을 나왔는지 바비큐를 굽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자전거 여행자 둘이 스윽 지나가는 게 보인다. 커플 여행자였는데 바로 마을을 빠져 지나가나 보다.
끼니를 때우고는 왼쪽 페달을 다시 손보고 출발하려는데 아까 지나가는 것 같던 커플 여행자들이 다가왔다. 마침 점심을 먹으려나 보다. 짧게 얘기를 주고받는데 가는 방향이 같았다. 그분들도 제럴딘까지 간다고 한다. 언뜻 키위 파크에서 쉴 거란 얘길 들었다. 나는 이미 점심을 먹고 딱히 할 말이 생각이 안 나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누군가와 같이 다니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막상 외국인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간다니 무슨 얘길 해야 하나 부담이 된다.
마을을 벗어나 달리는데 속이 안 좋다. 요 며칠 변비가 계속되는 것 같다. 배에 가스가 차는 기분이다. 딱히 주변에 큰 볼일을 볼 곳이 안 보인다. 소변도 마려워 몸을 옴짝달싹 못하며 달리다가 적당한 장소(누군가의 집으로 가는 듯한 길 목이었지만)에서 소변을 해결하고 다시 달렸다. 햇빛이 강렬해서 힘은 들지만 모처럼 재미난 도로를 달리고 있다. 다운힐이 많아 속도도 붙어 달리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 하이힐이 있어 몇 번 낑낑거리다가 드디어 제럴딘에 도착했다. 가까운 공중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i site를 찾았는데 문을 닫은 것 같다. 그냥 바로 키위 홀리데이 파크로 가서 텐트를 쳤다.
3일 동안 못 씻었더니 온 몸에서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텐트에 짐을 때려 넣고 바로 샤워를 했다. 오래간만에 따듯한 물에 몸을 맡기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뒤따라 오는 분들은 얼마나 왔을까. 두 분 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던데 나랑 달리는 페이스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빠르셨다. 한 달 동안 종아리에 근육 좀 붙었겠지 했는데 연세가 많은 분들과 비등비등하다니..
샤워 후 옷을 갈아입고 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데 아까 그분들이 도착했다. 허허. 벌써...
인사를 하고 마트로 갔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치킨을 먹기로 했다. 치킨과 맥주, 옥수수 등을 사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옥수수는 내일 간식용으로 찌고 닭과 맥주를 먹었다.
얼추 식사를 마치고 내일 루트를 보는데 가이드북에 나온 길에는 적당한 캠핑 장소가 보이질 않는다. 지도를 펼쳐보니 다른 길이 있다. 그곳으로 갈까 생각하는데 아까 만났던 여행자 중 여자분이 말을 거셨다. 내일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지도를 보고 이 길로 갈거라 하니 자기들은 이쪽 길 갈 거라며 알려주신다. 그 길에 좋은 경치가 있다고 하면서 대화를 주고받다가 얘기가 길어지는데 와인 한잔 하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좋다고 하고 그분들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남편분 이름이 한니스(Hannes)였다. 남편은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부인은 스위스 사람인데 꽤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다. 뉴질랜드만 5개월 정도 여행을 했다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했더니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다시 취직을 해 일을 하고 다시 여행을 하는 식이라고 한다.
근데 왜 하필 자전거 일까.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도 때때로 '아.. 차로 가면 15분 거린데 3시간을 가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연세도 지긋하신 분들이 이런 여행을 할까.
한니스씨는 천천히 여행을 하면서 경치를 보고 냄새 맡고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다. 이미 유럽에서도 여행을 하고 남미에서도 여행을 했다는데 정말 대단하다.
더욱이 이런 커플들을 보면 여자들이 특히 대단해 보인다. 남자한테도 체력적으로 보통 일이 아닌데 말이다. 대화를 하고 나니 내일은 조금 쉽고 빠른 길로 가려다가 이분들이 이야기 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주행거리: 93k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