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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Jul 20. 2018

8. 낯설어서, 보고 싶다

미안해
여기가 내가 데려다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야




엄마가 아플 때 막연하게 엄마의 죽음을 상상해봤었다. 언제 엄마가 제일 보고 싶을까, 필요할까를 막연히 떠올려 보며 혼자 무서워했었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이 현실이 된 후엔 그 상상들이 우습게 여겨질 만큼 말도 안 되는 순간에 엄마가 보고 싶다. 게다가 그 순간들은 예고도 없이 밀려들어와 나를 늘 무너트리곤 한다.



3년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두던 날.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은 내가 마지막 날 많이 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후임자가 구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마지막까지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겨우 일을 다 마무리하고 부서별로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그 순간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수고했다. 고생했어. 감성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숱한 말들도 그저 공중에 흩어질 뿐이었다.



인사를 다 나누고 자리로 돌아와 나가려고 할 때, 아까 인사를 나눈 팀장님에게 카톡이 왔다. 그리고  또 역시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때 행사 신청해주셨던 거 혹시 어머니 맞아요? 그때 찍어둔 사진이 있는데, 잘 나온 건 아니고 핸드폰으로 막 찍은 현장 사진인데 혹시나 해서.. 보내드리고 싶었거든요"



엄마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진행한 유방암 환우 행사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그 팀에는 엄마라고 말하면 서로 불편하고 신경이 쓰일 것 같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팀의 팀장님이 엄마의 부고가 회사에 공유된 후로 그때 그 사람이 나의 엄마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내내 그때 찍어둔 사진을 나에게 공유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받아 열어보는 순간 울음은 주체 없이 터져 나왔다. 회식을 가는 택시 안이라 새어 나오는 울음을 겨우 막으려고 노력했다.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시간 속의 엄마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함께 하지 못했음이 후회스러웠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엄마의 말, 엄마의 웃음을 엿듣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엄마와는 쌓아갈 시간 없이 쌓아온 시간들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다.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은 그 아까운 기억들마저도 침식시켜버린다. 그래서 낯선 순간 속 엄마를 사진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해서 적어도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리움이 덜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회식을 끝내고 남자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왔다. 마지막 날은 어떻게 보냈냐는 질문에 최대한 담백하게 아까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괜찮은 척도 잠깐뿐, 결국 내내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아이처럼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나에게 남자 친구는 말없이 휴지만 연신 건네주었다. 섣부른 위로 없이 그대로 나를 두었다. 한참을 울었고 울음이 잠잠해질 때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추었다. 정신없이 우느라 몰랐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엄마가 있는 납골당이었다. 남자 친구는 차를 세운 후 나를 안아주면서 자신이 엄마에게 데려다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여기까지라 미안하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때 거기서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준 건 엄마 같았다. 낯선 순간 속 엄마를 마주해 그리움뿐만 아니라 죄책감으로 흔들릴 때, 무너지지 않도록 엄마가 남자 친구를 보내준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도 이렇게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이 받기만 하는 못난 딸이다. 또, 그 사진 속 순간처럼, 엄마는 나를 사진에서 또 하늘에서 지켜보지만 나는 엄마의 시간을 모르고 함께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한참은 더 울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것은 꼭 무엇인가를 알 때만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르는 낯선 순간이 빚어낸 그리움이 나를 목놓아 울게 만들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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