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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Jan 28. 2018

7. 감정(鑑定)할 수 없는 감정(感情)

너는 언니 죽으면
아무리 바쁜 일 있어도,
그 날은 나 보러 와라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이모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일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가지 못할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대신에 다른 날 엄마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리고 그 사정이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연락을 받은 날 나는 몹시도 화가 났다. 2번째, 3번째 기일도 아니고 첫 번째 기일인데, 하나밖에 없는 언니와 동생이 그 날 엄마 곁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리고 엄마가 떠난 지 고작 일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모들은 엄마를 벌써 잊은 것 같다는 생각에 화는 더해졌다. 동생에게 슬픈 건 우리 가족뿐이라는 푸념과 함께 한참 동안 화를 토해냈다. 그리고 동생에게 내가 죽으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가 죽은 날만큼은 나를 보러 와달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온 엄마의 첫 번째 기일. 작은 이모는 다른 일정을 조정해 엄마를 보러 왔다. 하지만 결국 큰 이모는 기일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큰 이모는 작은 이모와는 다르게 원래도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기에 ‘큰 이모는 우리만큼 엄마가 그립지 않은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왜냐면, 기일 당일에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일에만 내 마음을 쓰기에도 나의 마음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일이 지난 언젠가의 주말, 큰 이모로부터 엄마를 보러 왔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갔다. 간장 종지만한 마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큰 이모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기일이 지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는 큰 이모가 나에게 카톡을 보내왔다. 이모의 성격답게 담백했지만, 굉장히 뜻밖의 내용이었다.




서울은 많이 춥겠더라
큰이모가 엄마를 생각하는 글을 썼다
함 읽어봐줄래




큰 이모는 울산시인협회에 공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글을 잘 쓰고, 글을 나만큼이나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의외였다. 엄마를 생각하며 쓴 글이라니. 엄마의 첫 번째 기일도 함께하지 못할 만큼 엄마를 크게 그리워하지도 않는 이모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글을 읽어보기도 전에 지레 짐작했다. 글의 소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글을 써야 하는데 마땅한 소재가 없자 소재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슬픔을 살 수 있는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아닐까 하고.




우린 같은 반죽에서 만들어져 나온 화분 같았으며, 그 화분에 심어진 화초 같았습니다. 물뿌리개로 뿌려지던 물을 함께 받아 마시고, 여름날의 햇볕도 함께 받으면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웠지요. 깔깔거리던 웃음으로, 찡그린 얼굴로, 투닥거리던 손짓으로 금이 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며 우리의 유년은 자리를 잡았지요. 연대기에 실리지 않은 자잘한 이야기의 파편들이 쌓여 큰 무더기를 이루었습니다.그 무더기는 점점 높아지고 넓어지며 흐뭇한 풍경이 되고 있었습니다.

울산광역매일 '제망매가' 중 일부 발췌
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209581&section=sc30&section2=




이모가 쓴 글을 다 읽고 나자 내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내가 엄마와 함께 한 시간보다 이모와 엄마가 함께 한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모는 엄마의 언니였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관계와 추억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형태로 이모의 슬픔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모가 슬프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은 너무나도 성급했던 것이다. 오만 가지의 생각이 있듯, 슬픔도 오만 가지 모양을 하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이모는 이모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하나뿐인 둘째 동생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일 뿐만이 아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전과 다를 바 없이 나를 대하던 친구들에게 실망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도 그들만의 방식대로 나를 위로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했던 표현의 방법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들의 감정까지 내가 섣불리 재단할 권리는 없었는데 말이다. 큰 이모도 어쩌면, 나의 짐작보다 훨씬 더 깊이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런 추측마저도 한 사람의 소중한 감정에 대한 나의 자만이다. 모두가 각자만의 방법으로, 그렇게 각자의 감정들을 견뎌내고 있는 겨울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상대의 감정을 함부로 내다보지 말고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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