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청객 Aug 14. 2017

6.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누군가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좋은 거야




엄마를 떠나보내고 난 후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살다 보면 잊혀진다’ ‘산 사람은 살게된다’라는 류의 말이었다. 한 마디로 시간은 약이니 다 잊고 살아가라는 그런 류의 위로들. 그런 말들을 들어서일까, 아니면 기억할 때마다 너무나도 아파서일까. 나는 엄마의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했고, 행여 마주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애써 외면하고자 노력해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자 친구와 전에 살던 동네 근처로 데이트를 갔던 날이었다. 새롭게 이사한 곳에서 전에 살던 동네가 멀어졌다는 이유로 이사 후엔 거의 발길을 끊었던 지라 모든 것이 반가웠다. 그렇게 데이트를 마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던 길에, 선정릉이라는 동네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네가 창 밖으로 보이자마자 나는 거짓말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선정릉은 지독히도 아픈 기억이 가득한 동네이다. 엄마가 한 번의 큰 고비를 넘기고, 병원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우리 가족 모두 오분 대기조의 상태가 되었다. 기적이 일어날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 속에서도 오늘이 엄마와 이별하는 날일 수도 있다는 슬픈 가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나와 동생은 병원에서 엄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2시간 가량의 귀갓길이 무섭고 아까워졌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엄마에게 행여 무슨 일이 생길까 무서웠고, 귀가시간을 줄여서라도 엄마와 10분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급하게 엄마 병원 근처인 선정릉에 작은 원룸 하나를 얻어 지내게 되었다. 엄마가 진통제 덕분에 겨우 잠이 드는 걸 보고 나서야 원룸으로 돌아오면,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동생과 나는 의미 없는 농담으로 웃어 보이기도 했고, 허한 정신은 채울 방법이 없어 대신에 야식들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동생으로부터 나는 엄마가 하루 종일 얼마나 아파했는지를 들으며 한숨지었고, 동생은 병원에서 당한 억울한 일들을 나에게 토로하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동생은 출근하는 나와 아빠를 대신해 엄마의 간병인 역할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나는 회사로 각자 헤어졌었다. 주말에는 번갈아 가며 잠깐 집에 들러 빨랫감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 오곤 했었다. 엄마가 건강하게 퇴원하고 엄마에게 우리의 원룸 생활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고 싶었지만, 나와 동생의 원룸 생활은 엄마의 장례를 다 치른 후에야 끝이 나게 되었다.




창 밖으로 선정릉이 보이는 순간 그렇게 애써 외면했던 이 기억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창 밖에는 2016년 어느 날 선정릉 원룸 생활을 하던 나와 내 동생이 서 있었다. 누구보다 힘들고 아파도 제대로 위로를 받지도, 제대로 티를 내지도 못했던 그때의 우리가 보이자, 안쓰러워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물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남자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위로를 건넸다.




누군가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네가 엄마를 그만큼이나 사랑했다는 거야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도 말고,
억지로 울지 않으려고도 하지 마
이상한 게 아니야, 괜찮아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아픈 기억도 소중한 기억인데, 나는 왜 외면하려고만 했던 걸까. 시간이라는 약을 덧발라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자 친구의 말대로 기억한다는 건, 사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제 누군가가 사랑했던 누군가 때문에 아파하고 있다면 ‘잊어버려’ 혹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라는 섣부른 위로보다는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라는 어느 노래 제목을 읊조려 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5. 당신은 늘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