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괴물 Aug 22. 2017

여행할 권리

#평가받지 않는 시간  #가끔은 가면을 벗자



얼마 전 유기견을 입양하고 동물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강아지를 잘 기르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는데, 선생님께서 마지막에 이런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산책을 시켜주세요. 강아지에게 산책은 여행과 같아요."


아, 강아지도 잘 크기 위해선 여행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집 밖을 떠나

새로운 세상의 냄새를 맡고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인사하고

정해진 배변 패드가 아닌 가로수 아래 어디든 자유롭게 오줌을 싸도 되는 행위.


그래, 강아지도 산책의 여운으로 하루를 포근히 살아가는구나.

답답한 하루를 답답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문득 '여행의 권리'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여행에 열광하는 이유.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잘 살려면 여행을 떠나야 할까.






#. 모두가 사랑하는 '자유'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은 '자유'였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언제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부모님, 친구들, 직장 상사와 동료들,

심지어는 잘 모르는 길거리의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특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별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던가.

남에게 불편함만 주지 않으면 될 것을

형식적인 예의와 격식을 차리느라 너도나도 화병에 걸리고 있다지 않은가.


멀리 볼 것도 없이 나의 하루가 그렇다.


답답한데 넥타이를 매야하고,

더운데 긴바지를 입어야 하며

불편한데 구두를 신어야 한다.


슬픈 날도 씩씩해야 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잔뜩 미소를 머금어야 한다.


거리의 풍경을 감상할 시간은 없고

벤치에 앉아 음악 한 곡 들을 시간도 없다.


경쟁 사회 속에서 조금만 멈칫하면 뒤쳐지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나보다 더 잘 참는 누군가가 언제나 치고 올라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 웃고,

속으론 화병을 차곡차곡 채워두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여행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자유함'을 마음껏 만끽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는 자유.


더울 땐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걷고

한 여름밤에는 맥주든 콜라든 뭐든 마시며 지친 하루를 위로하며

카메라로 근사한 추억을 찍고

사소한 풍경 앞에 환호해야 한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일상.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상.


이 완벽한 자유는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 평가받지 않는 시간


정글 같은 사회 속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누구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늘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다.

직장에선 성과에 대한 평가

주변 사람들에겐 인간성에 대한 평가를 받곤 한다.


결국 스트레스는 과도한 책임감과 부담감, 걱정, 근심, 나를 둘러싼 평가들로부터 나온다.


가끔은 가면을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여행 속에서는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누구나 가끔은 내려놓고 싶은 욕망이 있다.


무너지고 싶고 벗어던지고 싶고,

망가지고 싶은 욕망이 이따금씩 차오르곤 한다.


내 안에는 다양한 내가 살고 있다.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정착해 사는 것도 나고,

여행 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도 내 모습이다.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고 때론 또 다른 나를 위해 무거운 가면을 던져버려야 한다.

그래야 숨 쉬며 살 수 있다.

그래야 행복에 ‘균형’이 찾아온다.





여행을 가서는 눈치를 안 볼수록 성공이다.

내가 하고 싶은걸 얼마나 마음껏 즐기고 왔는지가 관건이다.


여행을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사치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힘들다.


꼭 해외로 갈 필요도 없다.

내가 평소 속해있지 않은 공간이면 그만이다.

내가 누군지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 곁으로 가서,

결국은 내가 연기할 필요 없는 곳으로 떠나면 그때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우린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

직장에서 꾹 참고 일했고,

일주일 내내 아이와 씨름했다.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의 행복을 내일을 위해 미뤄오곤 했다.

 

그러니 여행 가서 공식적으로 놀자.


잘 놀아야 이기는 그런 환상적인 일.

그게 바로 여행이다.





#. 내가 주인공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가끔은 왜 떠나 왔나 싶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떠나는 이유는

그동안 맡아보지 못한 또 다른 삶의 향기를 훔쳐내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다른 환경에 놓인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은 것.

그들의 인생 속으로 잠시나마 나를 투영해보는 짜릿함.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나를 괴롭혔던 많은 것들이

문득 사소해져 버리는 마법 같은 경험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 속에서 삶의 우선순위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추가로,

행복한 여행을 위해 꼭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바로 타인의 여행과 비교하지 말 것.


이상하게 타인의 여행은 늘 나보다 멋져 보인다

어떻게 저런 풍경을

어떻게 저런 음식을

어떻게 저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SNS에 공유된 누군가의 여행은 때론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진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여행을 떠나면서까지 남과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지긋지긋한 일상 속 상대적 박탈감을 벗어던지러 가는 여행에서까지 남과 비교하지 말자.


그저 여행 속에서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자.


살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웃어보자.

가장 맛있게 먹고

가장 외롭게 청승을 떨고

가장 행복한 것처럼 사진을 찍고


그렇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확인해보자.






오늘도 나는 강아지에게 여행을 선물해주며

나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어비앤비로 유럽 한 달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