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_20171023
방을 채운 소품과 생활도구들이 짐이 되는 날. 다음 집에서 사용하기 위해 손 때 묻은 살림살이를 버리지도 못하고 기어이 싸들고 이동하는 것이다. 고단하다.
또 한 번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사는 곳이 제법 마음에 들지만, 상황과 여건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으니, 나는 항상 옮겨 다닐 준비를 해야 했다. 부산에 거주 하고 9년이 다 되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부산시내 구를 옮겨 다니며 살 곳을 찾아가고 있다. 부산진구-남구-동래구-서구, 이제는 사하구. 또 한 번 낯선 동네를 방문한다. 언제쯤 이 지난한 이동을 멈출 수 있을까? 갈수록 피곤해진다. 익숙해지려는 관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살았다. 방을 하나씩 나누어 썼고, 많은 이들이 우리가 사는 곳을 방문 할 수 있게 적당히 열어두었다. 자주 드나드는 친구들은 출입구 번호까지 알고 있을 만큼 편하게 생각했다. 즐거웠다. 2년이 흘렀고, 부딪힘 없이 굴러간 공동생활에 두려움과 예민함이 생기려 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상처가 적은 방식을 찾은 것이겠다.) 이고지고 살았던 짐들을 밤새 정리하고 싸면서, 작은 감자칼 하나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함께 쓰되 소유는 분명한 공동의 생활은 알면서 모른 체 하였던 시간을 아슬아슬 지나온 것이었다. 발 끝으로 딛고 선 생활이라는 칼날을 버티기에 나는 미숙했다.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않은 사람을 참으로 미워했다. 그렇다. 마지막은 내가 정했다. 이기적이지만, 관계 사이를 쥐구멍 빠져나가듯 나가는 그 꼴을 못 견뎌서 한참을 원망했다. 무엇을 붙잡고 놓아주지 못하는 것인가? 1년, 2년... 긴 시간 고민했다. 결국 그 한 마리의 쥐를 내 속에서 다시 만났다. 견딤 없이 쿨(!)하게 이사 다닌 나였다. 계약기간 2년에 쫓겨, 내가 살았던 동네와 사람들과 단골 가게들을 당연한 듯 인사도 없이 떠나왔다. 그리운 마음에 가끔 버스를 타고 그 마을을 지날 때면 목을 쑤욱 빼고 창밖으로 보이는 같은자리 간판들을 보며 안심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애틋한 감정에 으쓱거렸다. 부끄럽다.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것,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처럼 사는 일도, 계속 고민해야만 하는 일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짐을 쌀 것이다. 짐을 줄여볼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세간은 하나씩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