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_20171023
오이지를 버렸다! 입에서 욕이 툭 튀어나올 만큼 화가 났다. 왜? 나조차 당황스러울 만큼 나는 오이지에 너무 마음을 쏟고 있었고.
“니가 왜 마음대로 오이지를 버리는데? 앞으로 같이 사용하는 것들은 상의 없이 마음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탁-! 전화를 끊었다. 아침부터 속이 시끄럽고 얼굴이 불그락 달구어졌다. 매끈한 오이가 한창 시장이며 마트가판에 한가득 올라 있던 봄에, 나는 10개의 오이를 샀고, 소금에 절여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아두고 매일매일 관찰했다. 3일쯤 지나니 물이 생긴 자리에 약간 뿌연 무언가가 생겼고 오이는 쪼그라들었다. 몸이 가벼워진 오이는 물위로 둥둥 떠올랐고, 물속에 잠겨 있어야 잘 절여지기 때문에, 물을 담은 비닐봉투를 누름돌로 썼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애지중지 담았건만 물러진 오이를 버리고 나니, 겨우 남은 건 5개 정도. 한 여름, 고춧가루와 참기름에 무쳐서 오독오독 맛있게 먹었다. 삭힌 오이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입맛을 돋우었다. 1년 내내 먹고 싶은 생각에, 지난번 외갓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가 담은 오이지도 두 개 얻어 와서는 김치냉장고 한쪽에 잘 모셔두었는데, 삭힌 음식은 상한 음식 같다는 그가 부지런히도 아침에 버렸다.
나는 매번 언젠가 먹을지도 모를 저장 음식들을 냉장고 속에, 베란다에 선반위에 챙겨둔다. 무말랭이, 우메보시, 고추장아찌를 특히 좋아해서, 김치나 된장만큼이나 우리집 식탁의 단골 음식이다. 집안일 중에 요리는 언제나 내 담당이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 입맛에 맞춘 음식들로 상을 차리는데, 상대의 입맛을 고려하지 못한 상차림은 일방적인 고백만큼이나 즐겁지 못하다. 겨우 만든 음식들을 꾸역꾸역 혼자서 다 먹어야 하니까. 두 계절은 지나야 먹을 수 있는 잔뜩 짜거나 시큼하거나 단 음식들은 생생한 맛과 전혀 다른 매력이 있는데, 조금씩 베어 먹어도 충분하며, 두고두고 먹으니 간편하고, 마음은 항상 든든하다. 어쩐지 소화도 잘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깜빡 잊고 그것이 있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가끔 먹는 음식들이다. 그가 삭힌 음식을 버릴 때면 항상 말했었다. “먹지도 않으면서...” 그렇다. 자주 먹지는 않는 것이다.
집 안 곳곳에 놓아둔 삭힌 음식들만큼이나 내 속에 묵히고 삭히고 쟁여둔 생각과 사건과 사람과 응어리를 바깥으로 들어내기 위해, 춤을 췄고 울음을 터트리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보았다. 발효시켜 맛이 드는 과정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