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_20170923
토요일 저녁, 삼겹살을 200그램 상추와 함께 샀다. 오랜만에 식탁에 반찬 몇 가지와 쌈장과 고추와 마늘을 썰어 놓고, 마음껏 먹겠다고 상을 차렸다. 기분이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캔도 꺼내서 남자와 마주 앉았다. 허겁지겁 구운 고기를 쌈에 싸서 먹는데 왜 계속 돈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대출을 해서 집을 빌려야 할지, 가진 돈으로 좋은 집은 아니더라도 이사를 해서 당분간 돈을 모아야할지. 나는 충분히 돈을 벌었고 억울한 생각까지 든다며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답답해하며 밥을 먹었다. 마주 앉았지만 마주 보지 않았다. 잠깐 마주친 눈빛 속에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오래 볼 수 없었다. 결혼을 하면 새로운 습관을 가지고 생활해 나가리라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30년의 세월동안 몸에 장착한 행동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다. 새로운 생활에 맞추어 조형해보려는 노력은 했었나? 갑자기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샤워기를 바로 걸이에 걸지 않고 그냥 수도꼭지 위에 걸쳐두거나, 화장실의 휴지를 다 썼을 때 새 두루마리 휴지를 걸이에 바로 걸지 않고 한동안 그 위에 얹어 놓고 쓴다던지, 행주를 쓰고는 바로 빨아두지 않는 것, 설거지를 미루었다가 한꺼번에 하는 것, 빨래는 통을 꽉 채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빨래 건조대를 가득 채울 만큼 모아서 하는 것, 아침에 이불을 개어놓지 않고 일어난 그대로 두었다 저녁에 다시 몸만 쏘옥-들어가서 자는 것, 저녁 무렵 열었던 창문을 닫지 않고 그대로 잠들어 버리거나, 작업 중이라며 컴퓨터 근처 책상을 갖가지 도구로 어지럽힌 채 며칠을 보내는 일. 나열하자면 너무 많은 나의 미루는 습관들. 이제 사실 나도 지겨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는 것이 습관인 것을.
길어지는 작업을 핑계로 늦은 밤 집과 가장 가까운 슈퍼로 간다. 허기와 허전함을 채우는 곳간. 서울의, 경주의, 일본의, 부산의 작은 동네 슈퍼에 항상 있었던 시원한 맥주는 나의 텁텁한 생활을 쓸어버리는 최고의 친구였다. 맥주를 좋아한다. 청량감이 있는 라거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한동안 맥주의 다양한 맛에 빠져있을 때에는 복맥주처럼 도수가 높거나 진득한 에일을 선호하기도 했었다. 한입에 들이켤 수 있는 작은 잔에 병맥주를 따라 마시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식사에 곁들이는 그 맥주가 참 맛있어 보였다. 술자리에서도 짠!을 하면서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내 속도에 맞춰 한 모금 두 모금 꿀떡꿀떡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좋다. 함께 마시던 이들은 언제나 물었다. “언제 잔이 비었어?” 한 때 병을 줄 세워놓고 마실 정도로 주변에 익히 알려진 맥주 애호가였지만 지금은 가끔 마시는 캔맥주 하나로 충분해졌다. 습관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
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나의 남편. 새벽 다섯시면 인력사무소로 나간다. 나는 그를 위해 밤이 아무리 늦어도 토마토 하나에 꿀을 한 스푼 넣어 믹서기에 갈아둔다. 아직 별빛이 남아 있는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일터로 나서는 그를 향한 나의 매일 아침 응원과 같은 주스 한 잔. 최근 내가 조형하고 있는 작은 습관 하나.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