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엘 아테네오> 서점에서 만난 보르헤스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작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적인 거장.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보르헤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세기 중반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각자. 바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칭하는 수식어들이다.
어려운 말들은 차치하고, 보르헤스는 예술가들의 예술가다. 20세기 중반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모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다. 움베르토 에코는 보르헤스가 없었다면 <장미의 이름>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에 떨어져 무한대로 반복되는 책장 속에 갇힌 장면을 찍을 때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바벨의 도서관>은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방이 무한히 쌓인 탑처럼 생긴 건물이다. 도서관의 책들은 사실상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문자 조합을 이용해 정렬된 책들이다.
이러한 보르헤스가 태어난 곳,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 있다. 사실 이 문장을 본 당신이 떠올리는 서점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런 서점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었다고? 하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서점'이라는 곳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 책장과 책장 사이에 숨어 있는 무한한 세계관들. 아름다운 문장들. 그 문장들이 누운 종이들이 일제히 뿜어내는 두근거리는 종이향들. 세상에 어떤 서점이 '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 서점을 한 번 보면, 당신은 끝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서점이었다.
"물론 나는 자유의지를 믿지 않아요. 난 그저 게임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 게임과 다른 게임을 해야 하는 게 나의 운명이에요. 나는 내 운명을 문학적 운명이라고 여긴답니다. 어린 시절 이후로 줄곧 그게 나의 운명이라는 걸 알았죠. 콜리지와 드퀸시, 그리고 밀턴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들은 자신의 운명이 문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나도 마찬가지였죠. 나는 내 운명이 읽고 꿈꾸는 것임을 알았어요. 어쩌면 글을 쓰는 것도 포함되겠지만 글쓰기는 본질적인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늘 낙원을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그건 내가 늘 꿈을 꾸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 <보르헤스의 말> 중에서. 마음산책.
엘 아테네오 서점 건물은 1800년대에 지어졌다. 원래는 '노르테 국립극장'으로 사용되던 것을 1919년 '그랜드 스플랜디드'라는 오페라 극장으로 재 개관했다. 아르헨티나의 황금기와 함께 열린 '그랜드 스플랜디드'는 발레, 오페라 같은 공연을 끊임없이 올리며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화를 꽃피웠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으로 유성영화가 상영된 곳도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쇠퇴와 함께 이곳의 공연과 명성도 점점 빛을 잃어가다 2000년, 출판그룹 엘 아테네오가 이 극장을 사들이고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랜디드' 서점을 개관했다. 매장 면적 2000 제곱미터로, 중남미 최대 규모의 서점이라고 한다.
엘 아테네오 서점의 가장 큰 매력은 아마 무대에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이 아닐까. 붉은 커튼 뒤로 핀 조명이 떨어지는 바로 저곳이 '그랜드 스플랜디드'의 무대인데, 지금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행 중에 나는 꼭 서점에 들른다. 그게 영어로 된 책이든, 스페인어로 된 책이든, 핀란드어로 된 책이든 상관없다. 작가들의 수많은 상상력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 풍경이 너무나도 좋다. 책들이 풍겨내는 서점 특유의 향을 맡는 것도 좋고, 예쁜 책 표지를 보는 것도 좋다. '어차피 읽지도 못 하는 거 뭐하러 구경해?'라고 비판적인 마인드는 잠시 넣어두자. 책 한 권을 써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브런치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방콕이었나 치앙마이였나. 이건 정말 읽지도, 유추하지도 못하는 태국어로 된 책들이 가득한 서점 속에서 마음이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내가 태국어를 알았다면 이 중에 보물 같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나름 신박하게 고안해 낸 꼼수는 바로... 그림책을 사는 것이었다. 그림책은 꼭 문자를 알지 못하더라도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예쁜 책 몇 권을 기념품으로 사와 책장에 꽂아두었다. 그중에 한 권은 <어린 왕자> 책이었다. 이 책이라면 내용을 다 아니까. 세상의 모든 언어로 번역된 <어린 왕자> 책을 여행기념품으로 모아볼까, 싶기도 했다. 엘 아테네오 서점에서는 체 게바라와 프리다 칼로의 전기가 그려진 그림책을 샀다. 아르헨티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서점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나갈 때는 괜스레 마음 한편이 묵직해진다. 그건 아마도 마음속에 깃드는 어떤 욕심과 질투와 희망, 혹은 숙명의 무게일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무게 같은 것.
근 10년간 잘 다니던 예능작가 일을 전면 중단하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길에 올랐다. 2주간의 신혼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고, 그 순간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좋았지. 자, 그럼 이제? 돌아가면? 돌아가면 뭐하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민의 줄기를 타고 타고 내려가다 보면 늘 문제의 근원적 본질에 가 닿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 꿈은 여행작가가 되는 것이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 책을 쓰고, 다시 여행을 떠나고 책을 쓰며 사는 삶. 상상만 해도 달콤할 것 같은 삶. 누구나 꿈꾸는 삶이지만 누구나 쉽게 살 수 없는 삶. 과연 나는 이 삶에서 내가 만족할 만한 위치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인가. 20대의 나였으면 근자감이 차고도 넘쳤을 텐데, 30대가 된 나는 무엇 때문에 커다란 두려움이 밀려오는지... 쉽게 자신감이 서지 않는다.
가장 쉬운 길은, 내가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는 것이다. 예능 작가로서의 삶. 사실 이 삶 역시 녹록지 않다. 워라밸, 저녁이 있는 삶, 최저임금 따위는 여기 이곳, 지구 반대편에 놓고 돌아가야 한다.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육아휴직, 육아휴직수당, 실업급여 따위도 없다. 이 모든 것을 스스로 마련해 놓아야만 한다. (요즘은 처우가 좀 달라졌다고 하는데...) 결정적으로 내가 예능작가 일을 전면 중단한 계기는 바로 육아 때문이었다. 프로그램 상근으로 들어가게 되면, 육아를 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대신 봐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친정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는 결혼과 동시에 '독박 육아' 당첨자였다.
온갖 불리한 것들은 다 떠안고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이다. 불리할 대로 불리한데 진흙탕을 벗어나 나는 결국 볕이 잘 다는 너른 땅으로 올라서겠다고 발버둥 치는 기분이다. 발버둥 칠수록 느껴지는 건 나의 참담한 현실 조건들 뿐.
그런데... 그럼에도... 내 안에서 여전히 반짝반짝 빛을 잃지 않는 마음은 단 한 가지였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것. 그것이 예능 작가로서의 글이든, 여행 작가로서의 글이든, 드라마가 됐든, 라디오 대본이 됐든, 동화가 됐든... 어떠한 글이든 쓰며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마음. 나도 내가 왜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지 모르겠는데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해내는 지구의 핵처럼 '글을 쓰고 살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윌리스 반스톤:
프로스트의 시구를 빌려서 물어볼게요. 숲 속에서 난 길 중에서 우린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나요? 살면서 당신이 잘못된 길을 선택했을 때, 그 결과로 나타난 재앙이나 행운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사랑했던 잘못된 인연, 당신이 보낸 잘못된 나날에 대해서도.
보르헤스:
"알겠어요.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잘못된 인연, 잘못된 행동, 잘못된 환경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시인에게는 도구랍니다.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 불행조차도 말이에요. 불행, 패배, 굴욕, 실패, 이런 게 다 우리의 도구인 것이죠. 행복할 때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표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겐 실수가 주어지고 악몽이 주어지죠. 거의 밤마다 말이에요. 우리의 과제는 그것들을 시로 녹여내는 겁니다. 만약 내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적이라고 느낄 것이며, 주무르고 빚어서 형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종의 점토라고 느낄 거예요. 그러니 내 실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매우 복잡한 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서 그런 실수들이 나에게 주어졌어요. 내가 그것들을 시로 바꿀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난 스페인어라는 멋진 도구를 가지고 있어요. 물론 영어라는 선물과 라틴어의 기억도 가지고 있고, 내가 굉장히 사랑하는 또 하나의 언어인 독일어도 가지고 있죠. 나는 요즘 고대 영어를 공부하고 있고, 일본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난 계속 이러고 싶어요. 물론 내 나이가 여든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꿈꾸는 게 과업인 내가 계속 살고 꿈꾸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겠어요? 나는 항상 꿈을 꾸어야 하고, 그 꿈은 말이 되어야 하고, 나는 말과 씨름해서 최선의 것이든 최악의 것이든 그걸 형성화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내 실수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는 것 같군요. 내가 쓴 글에 관해서 말하자면, 난 그걸 다시 읽는 법이 없어요. 그걸 잘 모른답니다. 내가 뭘 썼다면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쓴 거예요. 그리고 일단 글이 출판되고 나면 난 최선을 다해서, 아주 쉽게 그걸 잊어버리죠. 우리는 친구 사이니까 얘기를 하나 더 해줄게요. 당신들이 만약 우리 집에 오게 된다면-난 적당한 때에 당신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북쪽 마이푸 거리에 있는 우리 집에 오기를 바랍니다-꽤 좋은 서재를 보게 될 것인데, 거기 내 책은 한 권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내 책이 서재 안에 자리를 차지하는 걸 내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죠. 내 서재는 '좋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내가 누군데 베르길리우스나 스티븐슨과 한자리에 놓이겠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내 책이 없답니다. 한 권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어요."
- <보르헤스의 말> 중에서. 마음산책.
보르헤스의 말이 마음속 깊이 꽂힌다. 꿈꾸는 게 과업인 내가 계속 살고 꿈꾸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겠냐는 말. 글을 쓰고 살고 싶은 게 과업인 내가 계속 글을 쓰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날들이었는데, '그거 말고 뭘 할 수 있겠어'라는 다소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된다.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 할 겁니다. 나의 구원은 글을 쓰는 데 있다고, 꽤나 가망 없는 방식이지만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계속해서 꿈을 꾸고, 글을 쓰고, 그 글들을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 충고와 달리 무모하게 출판하는 일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게 내 운명인걸요. 내 운명은 모든 것이, 모든 경험이 아름다움을 빚어낼 목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실패했고, 실패할 것을 알지만, 그것이 내 삶을 정당화할 유일한 행위니까요. 끊임없이 경험하고 행복하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어리둥절하는 수밖에요. 나는 늘 이런저런 일들에 어리둥절해하고, 그러고 나서는 그 경험으로부터 시를 지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 나는 새 책을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많이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군요."
- <보르헤스의 말> 중에서. 마음산책.
보르헤스는 '인간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에 새 해석을 제시했다. 보르헤스 문학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문학은 없다. 모든 책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호 텍스트'다. 작가와 독자는 텍스트를 매개로 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를 읊는 사람은 누구나 셰익스피어다. 인간은 허구의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허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허구다. 우리는 어둠을 견디기 위해 꿈을 꾼다. 우리는 꿈을 꾸지만 누군가의 꿈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위대한 작가는 후배 작가들의 글 속에서 희미하게 되살아나 영생을 누린다. 작가는 누구나 앞선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기에 독창적인 그 누구도 아니지만, 오히려 아무도 아니기에 죽지 않는 사람이 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나무위키 인용
보르헤스의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오후. 엘 아테네오 서점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보르헤스의 말에 마음을 기울일 일이 있었을까. 엘 아테네오 서점에 가고, 그 덕에 보르헤스의 말이 마음으로 읽힌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30대가 되고 나서 뼈저리게 느낀 건,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실패가 되고 그 실패는 그냥 '나'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모도, 선생님도, 선배도... 그 누구도 나를 가르쳐 줄 사람도, 내가 배울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 이후부터였다. 먼저 산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이래서 사람들이 먼저 산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고 또 읽는구나.
이 여행기가 끝나면 나는 또 무슨 글을 쓰고 있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분명한 건 어떠한 글이든 즐겁게 쓰고 있는 내가 있길 바라며, 엘 아테네오의 문을 나섰다.
"내 삶은 실수의 백과사전이었어요.
실수의 박물관이었지요."
-보르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