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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Sep 15. 2021

탱고가 원래 남자들끼리 추는 춤이었다고?

탱고는 어쩌다 라 보카에서 탄생하게 되었나


  나는 '춤'이라는 건 관능적인 몸짓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돋보이게 움직이는 몸짓이며, 보는 사람의 영혼을 순간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매혹적이며, 아름답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며, 언어를 대신한 가장 직설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란 인간은 직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동일한 이유로 나는 스스로 춤을 춘다는 행위가 너무너무너무너무 부끄럽다. 3살짜리 아이가 출 법한 '들썩들썩'까지는 맨 정신으로 가능한데, 예쁜 춤을 추라거나, 섹시한 춤을 추라면... 그래, 차라리 번지점프를 하겠다. 죽기보다 하기 싫은 게 번지점프지만, 번지점프보다 '못하겠는 게' 섹시한 춤이다.


  왜냐면 (내 기준에서) 춤이란 너무 직설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눈앞에 앉혀두고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직설적인가?

  상대를 눈앞에 앉혀두고 구애의 춤을 추는 것이 더 직설적인가?


  아...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3분 40초 동안 하는 것이 더 낫겠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해맑은 이런 나보다 더 심해서 남들 앞에서 노래도 잘 못 부른다. 노래를 못 하는 건 아닌데, 노래를 부르라면 꿀 먹은 사람처럼 입이 꾹 다물어지고 만다. 해맑의 노래를 들어 본 건 결혼식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서프라이즈로 '축가'를 불렀고... 당시 사회를 보던 개그맨 오빠 S는 '축시' 잘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노래도 이렇게나 쑥스러워하는데 춤은 웬 춤.


 

  이런 우리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탱고의 발상지'를 찾아가겠답시고, 라 보카의 뒷골목을 헤매고 다니고 어쩌고 저쩌고는 이미 앞서 두 번이나 언급했으니 이쯤에서 거두절미하고,



  후미진 뒷골목.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이민자들이 첫 발을 내디딘 라 보카.



  라 보카는 어쩌다 탱고의 발상지가 된 것일까?



아메리칸드림의 시작이었을 라 보카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태평양을 발견한 마젤란. 그의 이름이 아직도 거리에 남아 있다. (저 조각상의 남자는 다른 인물)


 

이곳에서는 카페들마다 아직도 탱고쇼가 열리고 있다



  19세기 말, 라 보카에는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온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가난한 이민자들은 라 보카의 단칸방에 정착했고 신분은 졸지에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낮에는 달콤한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뜨겁고 치열하게 일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낯선 이국땅의 서늘한 슬픔이 온몸을 덮쳐왔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 나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왔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곳. 해가 뜨면 집집마다 눈부시게 다채로운 색깔의 페인트로 희망을 칠했다면, 그 희망의 색깔들마저 모두 검게 만들어버리는 어둠의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힘겨운 노동의 시간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어둠. 혈혈단신으로 떠나온 곳에서 이젠 다신 돌아가지도 싶지도, 이렇게 가난하게 정착하고 싶지도 않았을 이민자들의 밤. 그 애달픈 밤을 '애환'이라는 단어 하나에 함축하기에는 그들의 슬픔과 상실이 얼마나 컸을까.



CAMINITO 거리 표지판



  밤이 되면 이들은 라 보카의 작은 골목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모인 그 골목은 '작은 골목'이라는 말 그대로 'Caminito'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라 보카 지역의 이민자들은 이탈리아 출신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들이 가진 유럽의 무곡과, 쿠바 선원들이 당시 쿠바에서 유행하던 춤곡인 하바네라(Havanera)를 가져오고, 아프리카 노예들의 아프리카 음악 칸돔베(Candombes)가 얹어지고, 여기에 아르헨티나 목동들이 기타에 맞춰 부르던 즉흥적인 노래인 플라야다스(Playadas)가 섞이면서, 라 보카만의 독특한 문화인 '밀롱가(Milonga)'가 탄생했는데 이것이 바로 탱고의 시초다.

  특히 탱고 음악을 들어보면 관능적이고 격정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슬픔의 정서를 완벽하게 표현해내는 음색이 바로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다. 아코디언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이 악기마저 라 보카 사람들과 닮지 않으래야 닮지 않을 수가 없다. 독일에서 비싼 아코디언을 개량하여 반도네온을 만들었는데, 이 악기 역시 바다를 건너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와 탱고의 특징적인 음색이 된다.



  밤과 술, 술집에 아른아른 드리워진 불빛과 일렁이는 슬픔. 온갖 나라 사람들이 뒤섞인 골목. 쿵쩍쿵쩍 신나게 울리는 음악들 속에 어딘가 모르게 슬픈 곡조. 춤과 분위기에 취해 사람들의 몸이 들썩인다. 들썩임이 춤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시작된 탱고는... 처음엔 남자들끼리 추는 춤이었다.



  이렇게 섹시한 춤이,
남자들끼리 추는 춤이었다고?



  그 이유에 대해서 더 깊게 찾아보니 '남자들끼리 추던 춤'이라는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뒷이야기로만 남아있는 듯하다. '항구의 남자들이 거리의 여인들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해 유행한 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건 좀 건전한 버전인 것 같고... 사창가에 줄을 서 있던 남자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앞 뒷사람과 함께 추던 춤이라는 야화 버전이 있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헨티나 탱고')


  나는 왠지 야화 기록에 더 마음이 끌린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기록하기에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이야기가 훨씬 더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라 보카에 가면 노상 카페, 레스토랑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에서는 노상 탱고쇼가 펼쳐진다. 카페에 앉아 더위를 식히거나 식사를 하면서 탱고쇼를 마음껏 관람할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쇼를 보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이렇게 라 보카에서 노상 탱고쇼를 관람하거나, 카페 토르토니에서 탱고쇼를 예약해서 볼 수 있다. 토르토니에서는 전문 무용수들의 탱고쇼를 관람할 수 있다.



라 보카 카미니토 골목 카페, 즉석에서 열리는 탱고쇼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의 슬픔이 한데 섞여 피어난 탱고.


  100년 전,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라 보카에 살았던 그 이민자들은 그들이 염원하던 드림을 끝내 이뤘을까. 그들이 색색의 아름다움으로 칠한 집 색깔들처럼 아름다운 색깔로 물든 미래를 끝끝내 맞이했을까.



 , 일렁이는 불빛 속에서 온몸으로 춤울 췄던 사람들은 이제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몸짓만은 여전히  보카에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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