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작가 Sep 14. 2021

라 보카의 집들은 왜 이렇게 알록달록할까?

아메리칸드림이모여든 곳, 아르헨티나 라 보카


  라 보카에 가자고 길을 나섰던 건, 순전히 그놈의(?) '거긴 가 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오늘 밤이 지나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못 가본 데를 가보자며 길을 나섰고, 하필이면 또 라 보카가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그 10분 거리를 그냥 택시를 타고 가기만 했어도... 배부르다고 걷지만 않았어도... 


  혹여나 이 글을 보고 라 보카를 가야겠다고 계획 중인 분이 계시다면 꼭!!! 택시나 투어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라 보카에 가시길 바란다. 꼭. 명심하기를. 여러분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꼭,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라 보카에 다녀온 다른 모든 후기를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라 보카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도 우범지역이니 꼭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것'이라고. 그런 곳을... 우리는... 배부르답시고 우범지역 한가운데를 저벅저벅 걸어서, 아니 이곳저곳 헤매다가 라 보카에 도착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무사히 라 보카에 도착해서 참 다행이다. (얼마나 어떻게 헤매고 다녔는지는 앞선 글에 써 놓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라 보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가장 후미지고 위험한 빈민촌이다. 그런 곳을 우리는 맨몸으로 헤매고 다녔으니... 오던 중, 맨몸의 사나이가 지나가던 우리에게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도 있었고, 문이 꽁꽁 닫혀 인적도 없는 골목길에서 낯선 이들에게 길을 물어봐야 했던 순간도 있었고, 화장실은 커녕 카페도 하나 보이지 않는 위험한 골목에서 화장실 긴급 상태가 됐던 순간도 있었고... 라 보카고 탱고고 뭐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자 싶었던 순간, 


  눈앞에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나타났다. 라보카에 도착한 것이었다. 

 





드디어, 라 보카에 도착했다 



  우리가 헤매고 다녔던 후미진 골목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라 보카의 분위기는 여느 평온한 관광지와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낮이 기울어가는 따뜻한 햇살마저 아른거려 비현실적인 곳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라 보카에서 가장 큰 피자가게가 아닐까.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여행책에서도 자주 봤던 빨간 피자 가게 건물을 보고 나니 긴장이 확 풀렸다. 정말로 라 보카에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덥고 긴장했던 해맑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라 보카의 골목 풍경
알록달록한 색감 때문인지 놀이터가 있을 것 같은 곳이었는데, 기찻길이었다. 아름다웠다. 
내가 찍은 사진



  해맑과 함께 신혼여행을 다니면서 각자 필름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찍은 사진들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단순히 카메라의 느낌과 필름의 색감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같은 장소에서 서로 어떤 시선으로 그곳을 보고 있었는지, 각자의 사진을 보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부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그 기억이 서로 다를 때가 종종 있는데 어쩌면 각자가 바라보는 시선마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이 기찻길이 라 보카에서 제일 예뻤다며 사진을 마구 찍었는데, 위의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해맑이 찍은 사진이다. 이곳을 각자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어떤 아름다움을 보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내 주는 두 사진이 아닐까. 


  뭐, 그래도 분명한 건 우린 이곳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렸다. 



해맑이 찍은 사진 






아쉽게도 이 기찻길은 운행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후미지고 치안이 위험한 빈민촌 속에 있는 관광지. 알록달록한 집들. 탱고의 발상지. 이런 키워드만으로 라 보카를 이해하기에는 이 세 개의 키워드들이 쉽게 한데 묶이지 않는다. 여행을 떠난 곳 어디든 그렇지 않겠냐만은, 라 보카를 진짜 이해하고 느끼려면, 라 보카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민자의 나라'다. 1519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마젤란'이 인류 최초로 남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태평양을 발견하고,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를 한 이후, 스페인의 정복자들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이들은 가로 세로 100m를 한 블록으로, 총 44개의 블록을 그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를 건설했다. 당시 도면 맨 하단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던 0번 블록, 그러니까 '정복자의 숙소'로 지정되어 있던 그 자리 그대로 현재 아르헨티나 대통령 궁이 위치해 있다. 


1580년 스페인 정복자 환데 가라이가 그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도면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40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810년 '5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1816년 '7월 9일' 아르헨티나는 독립국가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대로이자, 세계에서 가장 넓은 길인 '9 de Julio Street(7월 9일 가)'와 대통령궁이 위치한 '5월의 광장'으로 남아 있다. 

  말이 나왔으니, 9 de Julio 거리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왕복 16차선의 이 거대한 대로는 1887년에 디자인되었다. 이 대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000개의 블록 위에 있던 집들이 모두 헐려야 했다고 한다. 이 대로가 완성되기까지 근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길 한가운데에는 하늘 높이 솟아있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건설 4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이 오벨리스크는 1936년 건설 당시에는 사람들의 비판이 거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여전히 자유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광장이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벨리스크

  

  다시 아르헨티나의 역사로 돌아와서... 

  독립을 이루고, 내전이 끝난 아르헨티나는 1900년대를 맞이하며 그야말로 전성기 중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드넓게 펼쳐져 있는 팜파스 지역,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아르헨티나에서 1차 산업이 빠르고 크게 부흥했고, 지주들의 자본 축적과 해외 자본이 유입되면서 1차 산업이 빠르고 크게 발전했다. 특히나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이 유입되어 최초로 근대적 공장이 들어서며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된다. 

   나라는 더욱더 부를 쌓게 되고,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시절을 보내게 된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프랑스'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아르헨티나(Argentina)라는 국가명 마저 라틴어로 은을 뜻하는 'Argentum'에서 유래한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아르헨티나 사람처럼 부자다'라는 관용구가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넘어왔는데,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관문이자 항구였던 라 보카로 첫 발을 내디뎠다. 가난한 이민자들은 라 보카 지역에서 항구 노동자가 되어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1900년대 초반, 당시 우리나라 해외 이민자 1세대들의 경험담만 들어봐도 삶의 애환과 한을 다 헤아리지 못하듯이 라 보카에 '아메리칸드림'을 찾아온 이민자들의 슬픔 역시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까.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절실하게 염원하며 타국에 몸을 내던졌을 이민자들. 그 이민자들의 둥지가 되어준 곳이 바로 이 라 보카 지역이다. 


  이들은 '콘벤티요'라고 불리는 작고 좁은 공동주택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았다. 당시 이 지역에는 조선소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일하던 이민자들이 조선소에 있던 색색깔의 페인트를 가져와 벽에 칠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아름다운 라 보카 풍경을 만들었다. 알록달록 동화처럼 예쁘게만 보였던 라 보카의 색감들. 어쩌면 이민자들의 현실은 잿빛이었을지 몰라도, 페인트에 꿈과 희망을 섞어 이렇게 따뜻하고 예쁜 색으로 보금자리를 칠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을 것 같은 건물. 그때 당시 우리나라 건물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듯 하면서도 색감 때문에 귀엽다 :) 




내가 찍은 라 보카 항
해맑이 찍은 라 보카 항




  파란 하늘, 더없이 맑은 공기, 따뜻하고 훈훈한 바람.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아르헨티나로 넘어온 이민자들의 눈에 이 라 보카 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항구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면 라 보카가 시작된다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색색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라 보카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길거리에 넘친다 
테이블마저 알록달록한 라 보카 :) 



  라 보카에 칠해진 색깔은 꿈의 색깔들이다. 그들이 소중하게 품고 온 아메리칸드림의 색이었으며, 기어이 맞이할 미래의 색이다. 이것은 어쩌면 아르헨티나가 꿈꿨을 색일지도 모른다. 




이전 06화 달콤한 초콜릿 상자, 라 봄보네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