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작가 Sep 24. 2021

다른 사람들이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유

지구 반대편 신혼여행의 마지막 날



왜 수많은 신혼부부들이 신혼여행으로 휴양지를 갈까?



  나는 이 원초적(?)이고 시시한 질문에 콧방귀를 뀌었다. '휴양지 그까이꺼 뭐 3박 4일 드러누워 있으면 아이고 지루하다~~~ 좀이 쑤셔서 집에 돌아오고 싶은 게 휴양지지 뭐' 하고 생각한 나의 오만한 판단력이 화를 불렀다. 그 '화'는 신혼여행 2주 동안 잠복하고 있다가 마지막 날, 행복의 순간들이 중첩된 그 절정에, 활개를 치고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었다.






  택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9 de Julio 위에서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해는 주춤주춤 어둠에 밀려났다. 택시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어둠이 달려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해맑과 나는 꿈쩍 않는 택시 안에서 다리를 동동 굴렀다. 택시가 말이라도 되는 양, 어서 달려, 어서 달려가야지, 마음을 재촉하듯. 마음과는 달리 택시 안은 고요했다. 택시 기사만이 우리의 초조를 텔레파시로 받았는지, 별안간 창문을 열고 주먹 쥔 손을 흔들며 뭐라 뭐라 외쳐댔다. 스페인어를 전혀 몰랐지만 우리는 직감했다. 그 외침이 욕이었다는 걸.


  신혼여행 마지막 날. 가장 좋은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근처 아사도 뷔페에서 식사까지 거나하게 마치고 카페 토르토니에 들러 저녁을 먹으면서 볼 탱고 쇼를 예약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화려한 탱고쇼도 많고, 탱고 투어도 많고, 원한다면 탱고 수업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우리는 카페 토르토니의 탱고쇼를 예약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카페에서 열리는 탱고 쇼! 관람료도 저렴하고 근사한 저녁이 될 것 같았다. 이러한 계획까지는 좋았지. 여기서 라 보카만 걸어가지 않았어도...


  몇 시간을 라 보카에서 헤매다 탈진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엘 아테네오에 다녀왔다. 택시는 마지 리무진 차량만큼의 안락함과 쾌적함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인류가 발명한 교통수단 중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바로 택시일 거야!라고 극찬하면서. 지친 퇴근길, 큰맘 먹고 내 몸을 택시 안에 던져 넣고 창문 밖으로 미끄러지는 풍경들을 볼 때 그 소확행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아, 우리는 그 택시 안에서 너무 행복했다. 엘 아테네오에서 택시를 타고 토르토니로 이동하면 될 만큼의 시간만을 남겨두고 우리는 느긋하게 책 구경을 했다. 이것이... 또 문제일 줄은... 몰랐지...


  




  카페 토르토니의 탱고쇼 시간은 저녁 6시. 우리는 평일 저녁 트랙픽 잼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 넘게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솔직히 30분 동안 걸었으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였다. 달콤한 안락을 꾀하려다 지옥 속에 갇히고 말았다.

  이제 탱고쇼 시작 시간은 10분 남짓. 구글맵의 파란 점은 같은 자리에서 계속 깜빡였다.


  "오빠... 걸어가면 8분이라는데.. 어떡하지?"


  "아..."


  "지금이라도 내릴까? 내려서 뛸까...?"


  택시 기사는 연신 클락션을 울려댄다. 여기저기서 너도 나도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울려댔다. 차가 막히는 것보다 클락션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진 우리는 어떻게든 일단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의 동태를 눈치챈 택시 기사가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말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확실했다.


  "내려서 걸어가. 여긴 틀렸어."


  우리는 바로 택시에서 내려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한복판을 전력 질주했다. 학교 다닐 때 100미터 달리기도 이렇게 열심히 해 본 적은 없었는데, 아오!




Cafe Tortoni
1858년에 지어진 카페 토르토니는 아르헨티나의 화려한 전성기와 함께 오픈했다. 프랑스인이 이 카페를 처음 만들었는데, 자신이 좋아했던 파리의 카페 Tortoni를 모티브로 지었다고 한다. 토르토니가 연 이후, 이곳은 당대 유명한 예술가와 학자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는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물론이고, '여인의 향기'로 유명한 탱고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 아인슈타인, 힐러리 클린턴 등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 다녀간 곳이 되었다.
토르토니의 지하에는 매일 밤 탱고쇼가 열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저렴하지만 괜찮은 탱고쇼를 보고 싶다면 단연 이곳을 추천한다. 인터넷 예약은 안 되고 직접 카페 토르토니를 방문해서 예약해야 한다.



카페 토르토니를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100년이 넘도록 사용되고 있는 의자와 테이블, 샹들리에 같은 것들이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영화 <Midnight in Paris>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쟁과 급격한 현대화로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건물이 남아있다 해도 내부 인테리어는 현대화된 것들이 많아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듯한 기분을 느껴보기가 쉽지 않다.

  카페 토르토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20세기 초로 빨려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곳이 보르헤스가 앉았던 곳이었을까. 이곳에서 아인슈타인이 커피를 마셨을까. 그들도 이 카페의 문을 열고 이곳으로 걸어 들어갔겠지, 하며 점점 카페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르헨티나의 역사 다큐멘터리가 상영 중이던 곳


  시계를 보니 다행히 탱고쇼 시작 5분 전. 우리는 헐떡이는 숨을 참아내며 커튼을 젖혔다. 그곳에는 몇몇 신사들이 의자에 앉아 영상을 보고 있었다. 벌써 시작한 건가 싶어 우리도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담은 듯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신사들은 심각하게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10분이 넘도록 영상은 계속되었다. 탱고쇼 시작 전에 보여주는 영상인가...


  "이거 맞아...?"

  "탱고쇼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불안감에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지나가는 웨이터에게 물어보니, 내 손에 든 탱고쇼 티켓을 확인하더니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오 마이 갓!

 

  해맑을 불러내 다시 부랴부랴 지하로 내려가니 이미 탱고쇼는 시작되고 있었다. 좌석은 마음대로 앉는 좌석이었는데, 앞쪽에 잘 보이는 좌석엔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다. 뒤쪽 중간쯤 테이블에 앉아 시계를 보니 시작 후 15분이 흘렀다. 우리는 둘 다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헛웃음을 쳤다.



티켓에 적어 준 우리의 주문표. 100년 전에도 이렇게 주었을까. 왠지 사랑스럽다.



  원래는 저녁을 먹으면서 탱고쇼를 관람할 예정이었는데, 둘 다 허기도 입맛도 싹 가셨다. 피로가 온몸을 지배한 상태였다. 나는 파타고니아 한 병은, 해맑은 그마저도 싫다며 물 한 잔을 주문했다. 온갖 감정이 탱고와 함께 휘몰아쳤다.








  이쯤에서 그날의 '화'는 여기서 그쳤다고, 스위트룸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고 끝맺을 수 있다면, 그날의 나를 찾아가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놈의 대통령궁이 뭐라고, 나는 또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탱고쇼가 끝난 밤, 8시의 거리는 컴컴했다. 컴컴한 골목에 서서 우리는 잠깐 말이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 순간 해맑의 머릿속은 온통 '호텔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내 머릿속엔 온통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밤이네. 호텔로 가는 길에 뭘 하나 더 보고 갈 수 있을까'였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오빠. 여기서 5분만 걸어가면 대통령궁이 있다는데, 그거 하나만 보고 들어갈래?"

  "난 그냥 바로 가고 싶은데... 너무 피곤해."

  "어차피 가는 길이야! 여기 잠깐 보고 바로 택시 타고 들어가자."

  "그냥 가면 안 돼? 대통령궁이 뭔데?"

  "되게 예쁘대..."


  해맑의 간절한 눈빛을 애써 모른 척,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르헨티나의 대통령궁. 카사로사다. 건물의 외벽이 연분홍색이라 '분홍 집'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곳. 낮에 봐야 더 아름다웠겠지만, 컴컴한 밤이라도 꼭 보고 가고 싶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오빠, 여기 지하철이 있네. 지하도로 내려가서 올라가 보자."

  

  해맑은 말없이 나를 따라올 뿐이었다.

 

  지하도로 내려가니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분위기가 쎄 했지만 아르헨티나는 슈퍼 안에도 경호원 같은 경찰들이 있는지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눈치챘어야 했다. 그들은 진짜(?) 경찰이었다는 것을.

  

  설상가상 반대편 출구로 나가려면 개찰구를 지나야 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아닌데 돈을 내야 되나 싶어서 역무원에게 물었다.


  "저쪽으로 나가려고요."

  "왜요?"

  "대통령궁 가려고요. 혹시 그냥 지나갈 순 없나요?"

  "안 돼요. 교통카드 찍고 나가셔야 합니다."


  얄짤없었다.


  "그냥 안 가면 안 돼?"


  해맑의 두 번째 물음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마음이 약간 흔들렸는데,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도 갔다 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어느새 교통카드를 찍고 있었다.


  그래도 카사로사다를 보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예쁠 거야. 보고 나면 잘 보고 왔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혼자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괜한 지하철 요금까지 내어가며 출구를 올라가니 저 멀리 카사로사다의 뒷모습이 보였다. 점점 더 그 앞으로 다가가는데... 난데없이 커다란 펜스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펜스는 길 끝에서 끝까지 막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를 서성여야 했다. 난데없이 이게 뭐람?!


  "뭐야, 더 못 가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해맑의 마지막 인내심이 쥐어짜여진 것을.


  "됐어. 다 봤어. 택시 타자."

  

  해맑은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더 이상 그를 끌고 헤맬 순 없었다. 시계는 벌써 8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얼른 택시를 잡아 탔다. 5분이면 호텔에 도착하니까 얼른 씻고 해맑이 마시고 싶었던 와인을 마셔야겠다, 생각했다.



문제의(?) 카사로사다. 결국 정면은 택시 안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택시는 도로에 붙어버렸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 끝에서 시위대 행렬이 쏟아져 나왔다. 매일매일 시위가 일어나는 곳이라는 걸 깜빡했다. 아니, 사실은 밤에도 이렇게 시위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택시기사는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0분을 돌아 도착했다. 택시 안에서부터 호텔 룸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스위트룸에 올라와 신혼여행의 마지막 날 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끝내주는 야경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대차게 싸웠다.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말은 정말 진리다. 남들이  신혼여행으로 휴양지를 가는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아보네 마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찾네 마네, 이걸 하네 마네,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여행 말고 다른 이유로 싸울 수도 있겠지만...) 빈민가를 헤매다 길을 잃어 싸울 일도 없고,  한복판에서 교통지옥에 갇힐 일도 없고, 탱고쇼 장소를 잘못 찾아 헤맬 일도 없고, 저녁으로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1 1초가 아까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다닐 필요도 없는 것이다. 휴양지였다면 그저 선배드에 누워서 망고주스를 마시며 책이나 읽다가, 이나 하다가, 가져다주는 저녁을 먹고 다시 선배드에 누워지는 석양이나 보면 되는 것을...




  지구 반대편으로 오는 신혼여행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우리는 기어이 이곳까지 와서 신혼여행의 마지막 날 밤 이렇게 대차게 싸우고 등을 돌리고 누워 있나. 같은 침대에 서로 등을 돌리고 누워 있자니 수많은 감정들이 뺨 위로 흘렀다.


  언젠가 아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보던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단숨에 세상에서 가장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 침대에 마주 보고 누워 있으면 몸이 맞닿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서로 등을 돌리고 누워 있으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지만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그날 밤 우리는 지구 한 바퀴만큼 멀어졌다.









이전 09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엘 아테네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