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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숙 Oct 27. 2022

100년 역사 '강화나들길'

'심도기행(沁都紀行)'을 따라가다

제주도를 생각하면 올레길이 떠오르고 지리산은 둘레길로 연상되며, 강화도 하면 금방 나들길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걷기 마니아다. 그들은 두 발로 우리나라와 연애하는 사람들이다. 일상을 벗어나서 자연 속으로 스며 들어간 그들은 이제 전국의 어지간한 길은 다 섭렵했다. 그런 그들이 즐겨 찾는 길이 있으니 '강화나들길'이 바로 그 길이다.

걷기 열풍이 불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앞을 다투어 걷기에 좋은 길을 개발했다. '강화나들길'도 그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여타의 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길의 시작이 백 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100년의 역사, 강화나들길

한 선비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예순이 넘었다. 장수시대인 지금에야 예순 살이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백 년 전 그때는 노인 중에서도 상노인이었으리라. 그런 그가 길을 나섰다.
                                    

▲  갯벌과 함께 걷는 강화나들길 8코스.




때는 봄이었다. 선비는 단출하게 행장을 꾸려 나귀 등에 몸에 실었다.


斗頭我步帶春風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

一府山川兩眼中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 눈에 들어오네.

明月綠楊諸具榻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 구(具)씨 탁상에서

滿杯麯味使人雄     잔 가득한 술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1846-1916)은 과거에 급제는 하였지만, 벼슬길에 나서지는 않은 선비였다. 그는 당시 강화군의 17개면 100여 마을을 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두루 다 돌아보고 그 감상을 256편의 시와 산문으로 남겼다. 자신이 사는 두두미마을을 시작으로 해서 노정(路程)의 순서대로 글을 썼으니 '심도기행(沁都記行)'이 바로 그것이다. 


병오년(1906년) 봄에 선비는 길을 나섰다. 친구인 구(具)씨가 장도를 빌며 권하는 술을 몇 잔 마신 뒤에 불은면 두두미마을에서 선원면 쪽으로 길을 잡았다. 두두미마을(斗頭尾洞)은 강화부 관아로부터 남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지금의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가 두두미마을이다.


▲  길을 안내해주는 강화나들길 리본



당시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었다. 1905년에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은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맺은 조약이었다. 그로써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스스로 교섭할 수 없었으니,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화남 선비의 심도기행을 따라서


또 외래 문명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오면서 우리 전래의 고유 풍속들이 점차 훼손되고 있었던 것 역시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이었다. 그런 암울한 시대에 화남 선비는 자신이 사는 고장을 두루 살펴봤다. 자신이 깃들어 사는 고장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그리하였을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하였을지도 모른다.


'강화나들길'은 심도기행에서 출발했다. 2005년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화남 고재형 선비의 '심도기행'을 강독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선비가 나귀를 타고 다녔던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강화나들길을 있게 한 시초였다.


심도(沁都)는 강화의 옛 지명이다.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로 온 고려 무신정권은 39년 동안 난리를 피해 강화에서 살았다. 그때 강화의 인구는 삼십만 명이 넘었고 개경의 궁궐을 본떠서 강화에도 궁궐을 지었다. 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으며 부처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 조판도 시작했다.


▲  강화나들길 1코스에 있는 연미정입니다.



심도의 '도(都)'는 39년간 한 나라의 도읍이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강화도 사람들은 강화가 한때 나라의 수도였음을 상기하며 지금도 강화를 강도(江都)라고 부르기도 하며 강화가 심도였음을 잊지 않는다. 


역사와 함께 걷는 '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 1코스의 이름은 '심도 역사문화길'이다. 강화의 문화와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이 길은 조선 25대 왕인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집인 용흥궁과 고려궁궐 터 등 여러 유적지를 거쳐서 가는 길이다. 2코스는 강화 동쪽 해안에 있는 돈대를 보러 가는 길로 '호국돈대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길이다. 돈대는 조선 숙종 때 해안가에 쌓은 성곽으로 강화에는 54개의 돈대가 있다. 호국돈대길에서는 강화 동쪽 해안을 지켰던 10개의 돈대를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고려 왕릉을 보러 가는 3코스 '능묘 가는 길'과 강화의 드넓은 갯벌과 철새를 볼 수 있는 8코스 '철새 보러 가는 길'도 있다. 철종의 첫사랑이 담겨 있는 '강화도령 첫사랑길', '고인돌을 만나러 가는 길'도 있고 강화 밖 섬인 석모도와 주문도, 볼음도를 걷는 길도 있다. 이렇게 '강화나들길'에는 모두 20개의  길이 있어 길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반긴다. 


1906년 봄에 강화의 한 선비가 강화를 두루 다니며 시를 남긴 게 '강화나들길'의 모태가 되었다. 내 고장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결코 시도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 선비의 발걸음을 따라 가노라면 그 시대의 강화가 속속들이 살아난다. 


강화나들길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길이다. 걷는 걸음마다 강화를 넘어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다. 나들길은 '역사와 함께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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