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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Oct 30. 2023

그 아이와 그 동네, 오늘 우리

우리 모두의 이야기

지방에서 전학 온 중학교 2학년 아이의 눈에는 반항심과 겁이 섞여 있었다. 아이는 사투리를 티 내고 싶지 않은 듯 유달리 말수가 적었고, 유행 따라 한쪽만 길게 기른 앞머리 윗부분엔 탈색의 흔적이 살짝 남아 있었다.


그 아이는 서울의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지만, 이국적인 문화가 가득한 그 동네는 특히 낯선 동네였다. 어떤 이유로든 절대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무법 지대 같았다. 


두 개의 뿔과 꼬리가 달린 대악마들이 서식하는 던전에 입장하듯 처음 몇 번은 숨죽여 다녔지만, 겁 없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파티를 이뤄 동굴 지도를 조금씩 밝혀나갔다. 그곳은 그저 다채로운 삶이 어우러진 동네일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어느덧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그 동네에서 모였다. 방과 후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젤을 바른 후 삼삼오오 모여 보광동을 가로질러 그 동네로 향했다. 그 동네는 바짓단이 허리통만큼 넓은 힙합 바지를 사러 향하는 곳이었고, 나이키 농구화를 구경하러 가는 곳이었으며, KFC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추억을 만드는 곳이었다. 어느덧 아이들은 무법지대 같았던 그곳에 아무 이유 없이 놀러 가곤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집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 동네는 추억 속으로 남을 줄 알았다. 수년이 지난 후 미군과 함께 군 생활을 하며 그 동네가 다시 그 아이에게 왔다. 친한 미군들과 가끔 밥을 먹으러 가는 곳이었고, 랩퍼인 룸메이트가 주말에 공연을 하는 곳이었으며, 휴가 마지막 날 부대에 복귀하기 전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또다시 수년이 흘러 그의 아내와 연인이던 시절, 그들은 유난히 그 동네를 좋아했다. 작은 기념일마다 찾는 곳이었고, 특이한 음식을 즐기고 싶을 때 가는 곳이었으며, 콘서트를 본 후 밤거리를 걸으러 가는 곳이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특색 있는 상점들, 흔하지 않은 향미의 음식들은 둘만이 공유하는 잔상으로 남았다.




작년 오늘도 그곳은 각자의 기억 속 보통의 하루로 남아야 했다. 나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그곳에서 159명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그날 전부 멈췄다. 그 보통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나는 기억하고 나눌 뿐이다. 기억함으로써 그 이야기는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들의 기록을 읽고, 그 이야기와 묶인 모든 이들에게 남은 감정을 느끼며,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고 기도할 뿐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안고 그곳을 응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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