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공주 왕자예요."
한 베트남 대학의 한국학과 학과장의 이 말은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학생뿐 아니라 자신 역시 '공주 놀이'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대학은 사립대로서 학비가 다른 베트남 대학보다 높다. 따라서 이 학과장을 비롯한 여러 교원보다 학생들의 경제적 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다. 초·중·고나 대학교 등의 교원 월급은 기본적으로 낮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대부분 학교에 남지 않는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거나 프리랜서 통역으로 일할 때 훨씬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과장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나거나 SNS에서 본 많은 교원은 대체로 인정 욕구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교원의 SNS 역시 학생들 못지않게 인정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공개된 SNS에는 포토샵으로 보정된 사진이 가득하다. 누구나 개인적인 취향이 있지만, '예쁘게, 예쁘게, 더 예쁘게'에 몰두하는 현상은 현재 베트남 내 한국학의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급속히 늘어나는 한국(어) 학과와 학생 수(3)에 비해 대학 교육과 연구의 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한국학을 구성하는 학생과 교원의 두 측면에서 다시 보자. 먼저, 학생 입장에 보면, 케이팝을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이 한국 문화를 향유하거나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류가 곧 한국 문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학이라는 학문 전반은 물론, 한국어 교육에서도 학생들 간의 한국어 실력 차이가 심하고, 중도에 한국어를 포기하는 '한포자' 현상도 나타난다.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한국 기업의 인턴십이나 작은 한국 회사에 취직한 뒤, 한국인 관리자로부터 업무나 한국어 실력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이를 차별이나 무시로 받아들인다.
다음으로 교원은 어떤가. 학생들을 이끄는 교원들의 좁은 문화적 시각과 낮은 자존감은 대학 내 한국학 학습 문화를 왜곡시키고 있다. 모든 문제를 단 하나의 원인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교원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한국 기업이나 한국에서 오는 대학 관계자들에게 대우받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베트남 내 한국학은 급속한 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으며, 각 대학의 한국학과에서는 문화 교류라는 이름으로 여러 행사를 열고 있다. 겉보기에 이는 긍정적인 변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학의 내용이 한류라는 감성적이고 대중적인 문화 콘텐츠에 기울어져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복잡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부족하게 한다. 학생들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갈등보다 연예인이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교원 역시 이에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성비의 불균형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학과의 학생들과 교원의 대다수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한국 대중문화가 재현하는 이미지와 감성에 쉽게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오빠 ' 또는 '공주'의 나라로 소비되고, 그들의 인식 속에서 현실의 복잡한 한국 사회는 배제된다. 이는 한국학의 왜곡을 초래하고, 한국학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와 비판적 사고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학생들이 한국을 사랑하고 그 문화를 즐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러한 감성적 접근이 학문적 탐구와 비판적 시각을 대신하게 된다면, 결국 한국학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로 인해 베트남 내 한국학은 단기적으로는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학문으로서 발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류는 분명 매력적이며, 한국을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류만으로는 한국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베트남 내 한국학은 지금보다 더 폭넓고 깊은 이해를 지향해야 한다. 한국 문화는 단순히 화려한 연예 산업이나 대중문화만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사회적 맥락,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도전 속에서 형성된 다면적인 서사를 포함한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다루어질 때 비로소 한국학은 진정한 학문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꽃을 든 한류'는 이제 비판적 사고를 더한 '뿌리를 가진 한류'로 성장해야 한다. 단순히 한국을 동경하는 것을 벗어나, 한국이 어떠한 사회적 배경과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베트남 내 한국학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진정한 학문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