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우라고 칠판 필기 때 가급적 한자를 많이 씁니다."
한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지금 한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교수의 배려와 공감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중국에 대한 오해를 드러낸다. 중국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자를 사용했지만, 정작 그 한자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는 그들의 문화요소이며, 고대 중화질서에서 주변의 한국이 여전히 그 질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가 될 뿐이다.
한류의 첫 번째 물결은 대중문화 상품의 '유행'이었다. 한국의 드라마·케이팝·예능 프로그램 등은 동아시아를 거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한국 대중문화가 갖는 매력과 신선함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류가 그저 유행에 머문다면, 그 인기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유행은 늘 바뀌기 마련이고, 대중의 관심은 쉽게 이동한다. 따라서 이제 한류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 있다. 그 단계란 바로 중심을 지향하지만 패권주의나 문화제국의의 중심이 아닌 개방적이고 연대의 중심이 되는 '한류'(韓留)다.
새로운 중심-주변 구도에서 한국이 중심이 되는 한류는 단순히 대중문화의 수출을 넘어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이는 한국이 먼저 스스로를 중심으로 세우고, 문화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으로 한류 중심 잡기에서 시작한다.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한자를 사용해 가르치는 것이 일종의 배려일 수는 있지만, 그 배려가 자신을 낮추고 그들의 문화적 우위를 확인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통해 배워 나가도록 하는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한자를 중국 문화의 중심적 요소로 생각한다. 한자는 그들에게 있어 강력한 문화적 상징이며, 이는 곧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대변한다. 한국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온 유학생들에게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여전히 한국이 중국의 문화적 영향권 하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한류를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의 문화적 자존감을 되찾고, 우리만의 문화적 특색을 중심으로 한류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 한류는 단순히 '유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중심성을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한국 문화의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요소들을 강조해야 한다. 이는 케이팝과 드라마뿐만 아니라, 문학, 전통예술, 철학, 그리고 한국의 사회적 가치와 생활방식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문화적 영역을 의미한다. 한강 작가의 작품처럼, 한국의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문화적 자부심은 곧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새로운 중심의 한류는 단지 대중문화의 유행에서 벗어나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깊이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문화의 수출국으로서의 위치를 넘어, 세계 문화 지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심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내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국 문화가 단순히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임을 인식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우리 안의 문화 자존감을 키우는 데서 시작된다. 중국 유학생들에게 한자를 사용해 가르치는 대신,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이 문화적 중심으로 자리 잡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결국, '한류에서 한류로'라는 변화는 유행으로서의 한류를 넘어서, 한국이 중심이 되어 다른 나라의 문화 상품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한류 생태계 생성을 의미한다. 그때 해외 수상이나 어떤 수치로 드러나는 한류가 아닌 세계인의 일상의 문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