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다 Oct 27. 2024

한강, 금기를 거슬리고 한류로

“한강 알아요?”

“아니요.”


“어떤 외국 작가는 좋아해요?”

“중국 작가 완칭(晚情)을 좋아해요. 베트남에서 유명해요.”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한 베트남 여대생에게 물었지만, 한강을 알지 못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한강이 노벨상을 받기 전까지 그녀를 모르는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또 작가를 알고 있더라도 작가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다. 문학이 케이팝처럼 대중적인 것은 아니기에.

2024, 호찌민


노벨 문학상 수상이 발표 된 10월에 호찌민국립인문사회과학대학교의 한국학부에서 한강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대학의 한국학부는 베트남에서 한국어 전공 역사가 오래 된 대학 중 하나이다. 세미나에는 4명의 베트남 여성이 발표자로 초대되었다. 그 중 한 명은 <채식주의자>를 해외에서 첫 번째로 번역한 사람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사에는 케이팝 댄스 공연이 없었다. 문학 작품에 관한 행사였기에, 오늘의 분위기는 조금 더 차분했다. 대신 두 명의 학생이 한강의 작품에 어울리는 서정적이고 슬픈 한국 발라드를 불렀다. 노래는 아름다웠고, 발표자에게 건네는 꽃 역시 여느 때처럼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용기와 능력에 대해 논하면서도, 한강의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을 베트남과 연결해서 말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점령한 후 얼마나 많은 남베트남 정부 인사나 민간인이 사상개조의 이름으로 죽었는가.


“그럼 우리 언론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남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청중은 잠시 침묵했다. 이번 행사는 중국 사회 문제를 취재하는 여성 언론인을 초청한 자리였다. 그녀는 북경대 예술대학의 예술학석사(MFA)를 졸업한 나의 선배이기도 했다. 그녀가 모교를 방문하는 자리였지만, 그 남성의 질문은 '질문하지 않는 언론인'과 '비판 없는 글'을 암시하고 있었다.


어느 국가나 문제는 있다.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순간 그것이 곧 문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정해진 테두리 내에서만 문제 제기가 허용된다. 이는 문제를 드러내되, 체제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게 하는 형태의 자유다. 다만 제한된 문제 제기지만 사회의 다원성을 드러내는 증거로 체제 선전에 이용한다.


베이징대학은 학문적 전통으로 '독립사고'(獨立思考)를 내세운다. 독립사고는 대학이 학문의 자유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고, 많은 학생과 교수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옹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문의 자유 역시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가능했다. 대학 내에서도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주제는 철저히 규제되었고, 체제 비판적인 시각이나 민감한 주제에 대한 논의는 금기시되었다. 대학이라는 공간조차도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제한된 자유의 범주 안에서만 움직였다. 


한강의 문학적 성취는 단순히 개인의 창의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성장해 온 환경, 그리고 그 환경이 만들어낸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가능했다. 그녀의 작품은 개인의 고뇌와 사회의 금기를 담아냈고, 그것을 통해 사회와 대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강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억압, 그리고 투쟁 속에서 새로운 문학적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문학이란 항상 금기를 넘어서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꽃을 피운다. 한강의 작품들은 한국 사회의 금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예술적 언어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느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문화의 우수성이 완성될 수는 없다. 그것이 촉매제가 될 수는 있지만, 결국 그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그것을 인정하고 소비하는 배경이 없다면 의미 있는 성취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류 역시 마찬가지다. 한류는 단순한 상품이나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모순, 투쟁, 그리고 제도의 변화가 뒤섞인 결과물이다.


한국도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속에서 많은 개인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와 투쟁 덕분에 한류는 오늘날과 같이 성장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지는 않는지, 예를 들어 민족이란 이름으로 다문화를 배척하거나 차별하지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한류는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문학처럼 문화·예술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한강의 문학적 도전과 성취는 한류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문화적 가치를 강화하고,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외형적인 성공을 넘어서, 진정한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더 깊은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적인 통찰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 중국과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의 한류 수용도 제한적이지만 한류 콘텐츠가 드러내는 사회 문제나 인류 보편의 문제를 자국의 상황과 연결지어 이해하는 움직임이 있다. 따라서 한류는 더 큰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단순히 문화 상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대화를 창출하고, 각 사회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응답해야 할 것은 한강의 문학처럼, 한류 콘텐츠가 인간과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공감과 연대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 때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전 07화 누구의 전통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