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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Dec 11.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계간작가 가을호 작가노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편지 한 장이 있다. 앞면에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들이 가득 적혀 있다. 뒷면을 뒤집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적혀 있어, ‘너의 모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만큼이나 사랑스러워’라고 말 하는 것 같다. 언뜻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기에 신비롭다.


한동안 나는 버텼다. 축 늘어진 채로. 인간은 욕망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내게 더 이상 강렬히 열망하는 것이 없었다. 하나의 열망에 매몰된 뒤 후유증에 앓았던 것이다. 열망하는 것을 얻은 뒤에는 공허함만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버티고, 버텼다가 잠에 드는 하루들이 반복되었다. 안온함을 편히 즐기지 못 했다.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면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그런 재미없고 지루한 삶이, 이것이 너의 미래라며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시와 글이 내게 찾아왔다. 잠시 그렇게 있어도 좋다고 말 해주는 것 같았다. 꼭 세상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만의 세상을 그려도 좋다고.


고등학교 절친들과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사는 게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고, 왜 살아야 하나 가끔 생각한다고. 아마도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그곳에 닿지 못하는 나와의 간극이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곱씹어 본다. 주인공 월터는 용기 없이 현실을 살아가는, 상상 속을 사는 남자다. 그러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상상 속에서만 하던 일들을 현실에서도 해내게 된다. 평범히 살아가는 하루하루들이 삶의 정수이니, 용기를 내어 현실을 살아가자고 영화는 말 한다. 이처럼 삶에 의문을 가지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은 특별하고 대단한 삶이 아니라 매우 사소한 하루들이다. 아빠가 매일 장난스레 하는 말, 집에 돌아오면 깨끗이 각 잡혀 정리되어 있는 포근한 침대, 엄마, 아빠, 오빠, 새언니와의 온온한 시간들, 잠시 떠난 여행에서 바라 본 자연과 같은 것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소중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 낭만적 삶이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기에. 그러니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사소한 우리의 삶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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