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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Jan 19. 2022

날갯짓은 난로

혼자만의 시간을 사랑한다. 내 방에서 스탠드 하나만을 켜 두고 책을 읽는 시간이 좋고, 일기를 끄적이는 시간이 좋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 내 삶에서는 필수요소다. 인간관계로 인해 머릿속이 시끄러워지는 날이면 혼자만의 세계를 꿈꾼다. 혼자 일하고 혼자 사는 삶을.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간식으로 쿠키를 사러 나가는 길에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아래에는 하천이 흐른다. 물 위에 고고히 떠 있는 하얀 오리 한 마리를 보았고, 비둘기들은 머리 위에서 잔뜩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그리고는 위태롭게 건물 외벽에 일렬로 착지했다. 위험해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비둘기들은 늠름하게 건물 벽에 앉아 있었는데, 마치 건물을 점령한 듯했다. 나는 종종 비둘기들의 세상을 상상하며 혼자 키득키득 웃고는 한다. 새들은 왜 떼 지어 다니는 걸까. 그러고 보니, 혼자 있는 새를 본 적이 드물다. 내가 날개가 있다면 혼자이고 싶을 것 같은데. 날개를 벗 삼아 온 지구를 떠돌며 말이다.

 

 

비슷한 풍경을 루마니아에서도 본 적이 있다.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과 한인마트에 갔다가 근처에 하나뿐인 일식집에서 메밀을 먹고 돌아오던 저녁이었다. 그날 그 시간, 하늘의 반은 검은 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 날 것처럼 음산한 기운을 주던 그들은 노을빛을 지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순천만 습지의 새들 또한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망원경으로 멀리서 새들을 바라보았는데, 넓은 들판 곳곳에 새들이 산재해 있었기에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작고 검은 새들이 떼 지어 땅 위를 걷는 것도 보았고, 늠름하고 부리가 긴, 툭 치면 하늘로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큰 새들이 들판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도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혼자 가만히 새들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멀리서 새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겨울철새들은 겨울이면 우리나라로 돌아와 봄이 오면 아주 먼 곳으로 떠난다. 먼 거리를 가기 위해서는 필수요소뿐 아니라 힘을 잃지 않기 위한 연대감 같은 것도 필요한가 보다. 겨울새들은 함께 다니면서 서로의 날갯짓을 난로로 삼는다. 쓰러지지 않도록.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새들에게도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또 다른 추운 겨울을 지날 따듯함 같은 것이 생기는 건가 보다.

 

 

봄을 맞아도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던 새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였다. 재작년 한겨울, 열 마리가 넘는 뱁새들이 아파트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죽어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너무나도 추운 날씨여서 패딩을 입고도 오들오들 떨어야 했던 날이다. 날씨 때문인 것인지,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모르겠다. 그들 또한 서로의 날갯짓으로 버티다 함께 마지막을 보낸 것이었을까. 조금이나마 온기를 느끼기 위해 붙어 있는 뱁새들의 모습에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겨울이 되면 나는 자주 이가 시리고 눈물을 흘린다. 내 앞니는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다. 어렸을 때는 이런 내 앞니가 싫어 이가 조금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나의 취약점이 드러난다. 치아 사이로 차디 찬 겨울바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취약점 또한 겨울에만 발현된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데 눈물은 흐르고 이는 시리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겨울을 싫어하기에 충분하지만, 나는 겨울이 좋다. 연말이 되어 내 곁의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는 나날들이 좋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누군가와 가까이 붙어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것이 좋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의 앞니와 눈물은 세상과 나와의 통로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엔 온기가 필요하다고.

 

 

지난여름   차도에서 죽어있는 비둘기  마리를  적이 있다. 홀로 죽어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저절로 나는 비둘기의 앞날에 대해 생각했다. 비둘기는 쓰레기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세계 너머에서는 비둘기와 뱁새들이 서로의 날갯짓에 온온함을 느낄  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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