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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Feb 09. 2022

아침 빵 생각에 설레본 적이 있나요?

엄마의 프렌치토스트

대학생  매일 저녁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빵을 만든 적이 있었다. 밀가루가 달걀과 우유를 만나면 말랑말랑한 하얀 찰흙으로 변했다. 거기에 당근을 조그맣게 잘라 넣으면 당근머핀이 되고, 납작한 동그라미로 만들어 초코칩을 뿌리면 초코칩 쿠키가 되었다.  마음 대로   없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빵은  맘대로 만들어졌으므로 나는 베이킹이 좋았다.



그치만 베이킹을 즐겼던 원색적인 이유라면 아마 빵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후문에는 계란빵 아저씨가 계셨다. 겨울의 별미였다. 천 원이면 보슬보슬한 계란빵을 두 개 사 먹을 수 있어서, 그 당시 좋아했던 친구와 하나씩 나눠 먹으며 집으로 가곤 했다.



나의  사랑은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서도 여전했다. 내가 잠시 머물던 루마니아에는 ‘지지라는 빵집이 있었다. ‘에고, 지지…’라고 말해야   같은 빵집 이름과는 달리, 그곳에는 맛있는 빵들이 가득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프레첼 모양의 빵을 좋아했다.  빵을   베어 물면 따듯한 초코 시럽이 흘러 나왔다. 다수  소수로서 마음이 힘든 날이면, 줄을 서서   빵을 샀고, 먹으며 집까지 걸어갔다.  당시 나는 유럽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중에서도 스페인에  다시 가고 싶다. 맛있는 츄러스를 가게마다 팔기 때문이다. 특히 세비야 골목길 작은 카페에서 팔던 츄러스는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분식집 철판  떡볶이가 보글보글 끓는 것처럼  솥에 츄러스를 - 튀겨 즉석에서 가위로 잘라 준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천상의 맛이었다.



이렇게 빵을 사랑하는 내게 어떤 빵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엄마의 프렌치토스트라고 대답할 것이다. 엄마의 프렌치토스트를 루마니아에서 흉내  보았음에도 맛은 달랐다. 재료와 요리법이 같은데도 그건  신기한 일이다. 내가 처음 엄마의 프렌치토스트를 맛본  고등학교 1학년 때니까,  이후로부터 10년이 넘도록 나의 아침은 프렌치토스트다. 엄마의 프렌치토스트는 노란빛을 띠어 빛깔부터 사랑스럽다. 식빵 하나를 작은 사각형  개로 귀엽게 자른 모양이다.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바삭거린다. 그리고 적당히 부들부들하다. 위에는 슈가 파우더, 계피 가루가 뿌려져 있어 오묘한 맛도 난다. 처음 엄마의 프렌치토스트를 먹었을 때는 밤잠을 설쳤다. 내일 아침이 되면 프렌치토스트를 먹을  있다는 사실에, 설레어 빨리 아침이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10 뒤인 지금도 엄마가 해주는 프렌치토스트를  때면 기분이 마구 좋아진다.



엄마는 크리스마스 2주 전, 벽에 붙이는 트리를 사오셨다. 전구를 잇고 불을 켜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트리와 함께 작은 루돌프와 작은 캔디가 그려진 예쁜 접시도 사오셨다. 갑자기 왜 접시를 사왔냐고 여쭤보니, 아침 먹을 때 조금이라도 기분 좋게 먹고 가라고 사왔다고 하셨다. 나는 그 귀여운 접시에 담긴 엄마의 프렌치토스트를 상상하면 벽난로가 켜진 거실에서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그려진다. 그 어린아이는 식탁에 따듯한 우유 한 잔과 함께 쪽지를 놓아두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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