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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r 30. 2023

가득 넘어지기

실패를 반복하는 일

 


 평일 저녁 여섯 시에는 1-1번 버스를 탄다. 매일 똑같은 자리에 앉는다. 맨 뒷자리 바로 앞 왼쪽 창가 자리. 집으로 가는 한 시간 동안 나는 뒤통수들을 만난다. 오늘을 살아낸 뒤통수들은 곧 안전한 곳으로 당도할 것이다, 그것을 아는 순간 함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주 가끔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어제는 비닐봉지에 한 아름 딸기를 안고 탄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두부를 안은 채였다. 딸기 냄새가 났던 아저씨에게 오늘은 두부 냄새가 났다. 안온한 세계로, 버스 카드를 찍고 냄새를 안아 갈 것이다. 그 냄새는 이런 생각을 들게 했다. 나는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이고, 사람들은 내 버스에 오르고 내린다고. 그러니까 그들은 잠시 머무는 승객이고 나는 그들을 태우고 길을 간다. 언젠가 운행을 마치면 나도 버스를 내릴 것이다. 혼자 남은 버스는 삶의 흔적이 되고.      


 사람의 몸은 살짝 기울어져 있다. 곧게 서 있는 게 아니라, 곧 달려 나갈 것처럼 살짝 앞으로. 요가를 할 때면 몸의 기울기를 가득 느낀다. 온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는 것, 척추에서부터 목까지 바르게 세우는 일은 꽤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서 있는 일조차 힘든데, 잘 걷는 일은 더 어려울 것이다.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웃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수행한다. 그러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뱀은 넘어지는 느낌을 모른다. 무족영원, 발이 없어 영원하듯 유영하며 살아가는 존재. 그에 비해 나는 오늘만 여덟 번 넘어졌다. 계획했던 일의 반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쉽게 동요되고 말았다. 소중한 친구의 전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희망찬 아침을 기대하는 기분으로는 잠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손이 있고 겨드랑이가 있다. 손을 내밀어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줄 수 있고, 부축할 손이 들어올 틈이 있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버스가 급정거하면 어떤 승객은 넘어진다.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고, 넘어진 승객은 곧 일어나 민망해하며 헛기침한다. 버스는 그렇게 계속 간다. 반복된 실패를 쌓으며 걸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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