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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Feb 27. 2020

개인의 취향

 타인의 취향에 별점 매기기

좋은 영화,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을 이야기해보자.

내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1. 영화가 끝난 뒤에,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

 2. 영화감독의 전작들이 궁금해지고, 모두 찾아보게 만드는 영화

 3. 함께 본 이와 내가 서로 다른 주제를 경험할 수 있는 영화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4. 영화감독의 다음 작품이 목 빠지게 기다려지는 영화


 내게 좋은 음악의 기준은

 1.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

 2. 악기의 구성이 풍부하여, 악기 파트 별로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음악 (예를 들면, 오늘은 기타 소리만 들어보자!, 오늘은 드럼만 집중해서 듣겠어.)

 3. 소리 내서 따라 하고 싶은 음악

 4. 계속 듣고 싶은 음악


 내가 가진 기준들은 모두 객관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감독의 11번째 영화, 최신 인기 음악 순위에서 단 한 번이라도 1위를 한 음악으로 기준을 정했다면, 다소 좋은 기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태껏, 이리도 객관적이지 않은 취향의 기준을 가지고, 타인의 취향을 폄하하고 평가해왔다. 저급한 영화, 깊이가 없는 음악. 예전 음악들이 좋아서,  밤새도록 찾아 듣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허나, 편협하기로 유명한(가족들과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로서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든, 표면적으로든 많은 이들의 취향을 평가하고 손가락질 해왔다.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때 변할 수 있다고 했다. '타인 취향에 별점 매기기' 행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에는 나름대로 굵직한 서너 가지 갈등(내가 아주 좋아하는 이들과 겪은 갈등들이다.)들과 작은 사건이 큰 몫을 했다. 나는 때로(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지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다. 특히나 영화가 내겐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알아봐 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게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답답한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표현되었고, 그들은 나의 편협함에 질색하여, '사람마다 좋은 영화는 달라.'라는 너무나 당연한 조언을 해주었다. (역시나 우리는 진정 사랑하는 사람일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할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겉으로는 "그럼요, 좋은 영화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그렇지요."라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속으로는 '그렇긴 한데요, 저기... 정말 좋은 영화는 따로 있답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타인 취향에 별점 매기기'에 매듭을 지어준 작지만 큰 몫을 한 사건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난 오늘 팟캐스트에서 음악평론가가 "팝송을 사랑한다면 이 노래는 알아야 합니다. 이 노래를 모르곤, 팝송을 좋아한다고 하긴 힘들죠."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노래는 바로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스페이스 오디티)' 였다. 우리 어머니는 팝송을 좋아하신다. 특히 핑크 마티니의 'the gardens of sampson & beasley' 를 사랑하시며, 스티비 원더도 좋아하신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는 잘 알지 못하신다. 나도 팝송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노래는 내 심미안의 회로에서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 (영국 락음악의 계보를 찾아, 발견한 것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우주 관련 동영상을 찾다가, 문득 듣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그 전에는 팝송을 사랑하지 않은 것일까?

 평론가가 할 일은, 아니 더 작게 음악, 미술, 영화를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넓게 접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은 '층'을 나누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음식을 많이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러 그러하듯이 '이것 좀 맛봐. 처음 보는 맛일 거야. 어때? 먹어보고 생각해봐. 싫으면 그만이고.' 한 번 권해보는 일이다. 내가 조금 더 깊게 안다는 생각은 버리고, 내가 조금 더 다양하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권하고, 나누는' 자세와 타인의 취향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가진다면, 더 이상 사람들이 쭈뼛거리며 자신의 취향을 소심하게 내어 보이는 일은 조금 더 줄어들지 않을까.

 취향의 벽을 깨어버리고, 타인의 취향과 편안하게 교류한다는 것은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약 8-9년 정도 튼튼하게 쌓아 올린 벽을 허문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벽을 보았기에 깨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도전! 해보려 한다.


아래 첫 동영상은,  내가 스페이스 오디티를 처음 접하게 된 동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aOC9danxNo

두번 째 영상은 어머니가 사랑하고도, 사랑하시는, 핑크마티니의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3GQntM0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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