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침 여덟 시 반쯤의 지하철에 몸을 실은 지 삼주쯤 됐을 때였다. 항상 밥을 같이 먹던 동료가 여권을 찾으러 가서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 열한 시 반부터 밥을 먹고 나니, 남은 점심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꽉 채워서 쉬고 싶은 게 직장인의 본능 아닌가. 지도를 켜니까 회사 근처에 매봉산 근린공원이 있었다. 산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회사 건물을 벗어났다.
며칠 전, 겨울이 '나 이것만 하고 이제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한파를 전국에 뿌리고 있을 때였는데, 그나마 해가 한참 머리 위에 있을 때라 추위를 조금 덜 느끼기 좋은 시간이었다. 뚜벅뚜벅 걸어서 상암초를 지나고 아파트 단지 안을 지나쳤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회사 근처를 전전하고 있을 때라 산책하시는 할머니만 보였다. 사람보다 새들의 수가 더 많았다. 새들 사이를 지나오니 작은 도로를 끼고 산처럼 보이는 오르막길이 보였다. 계단에 발을 맡겼다. 뭔가 공원다운 것이 조성되어 있는 줄 알고 한참을 찾았지만 온통 나무로 만든 계단만 나왔다. 이러다 회사를 온 게 아니라 등산을 하러 온 것이겠다 싶어서 적당히 걷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허벅지가 감각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몸에서 밖에 그만 있으라고 신호를 보내고도 있었다.
전날 이번 겨울 치고는 눈이 꽤 많이 내렸는데, 아무래도 산이라 거의 녹지 않은 채였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을 밟기는 처음이라, 남들한테 '난 눈 별로 안 좋아해.'라고 말한 게 무색하도록 새하얀 눈에 발자국을 찍고 다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새로운 길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 싶어서 길이 난 곳으로 한참 내려갔다. 소금 같은 눈을 가까이서 보고, 직부감으로 발과 하얀 눈이 잘 걸리게끔 사진도 찍으면서 말이다. 눈 밟는 소리와 내 숨소리만 들렸다. 고요한 여유에 젖어있을 때쯤, 다른 아파트 단지로 통하는 곳이라서 출구를 폐쇄했다는 팻말이 나를 맞았다.
한 3초간 멈춰있다가, 별 수 없으니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끝인 줄 알았던 오르막길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헉헉대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내가 이렇게 많이 내려왔다고?' 이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려올 때는 몰랐던 거리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땅속으로 가라앉은 소음 속에서 뽀득거리는 발소리에 귀 기울이고, 눈 결정을 보며 여유 부리며 내려올 때와는 달리, 올라갈 때는 오로지 숨만 거칠게 내뱉고 있었다.
보통 내려가는 것이 쉽다.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기 때문에 풍경을 품고 여유를 가진다. 그런데 예상치 못 한 곳에 막다른 길이 있었다. 당연히 이대로 회사로 향하게 될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하는 지루함도 겪어야 했다. 보통 사는 게 꼭 그랬다. 끝난 줄 알았을 때 막다랐고 이내 다시 올라야 했다. 기억은 어리석어서 내려올 때 보았던 것들을 곧잘 잊었고, 품었던 여유에는 금세 지루함을 느꼈다. 되돌아가는 길이 더 길다고 생각했던 건 아마도, 길 끝에 반드시 출구가 있을 거라고 단정 지었던 나의 착각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다시 오를 두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폐쇄된 문 앞에서 주저앉더라도 언제든 걸어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어쩌면 내려올 때의 낭만이 오를 때의 동력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올 겨울 눈은 다 온 것 같지만, 살아나는 푸른 잎을 보며 또 다른 동력을 만들어야겠다. 미세 먼지와 코로나는... 음. 그 힘으로 함께 이겨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