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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Nov 11. 2024

꽃 같던 내 어머니

올해 4월, 시어머니께서는 7명의 자식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 모으셨다. 그간 병환 소식 없으셨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호출에 놀란 우리는 서둘러 모였고, 어머니께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을 꺼내셨다.


"변이 안 나오니 수술을 해서 똥주머니를 차고 싶다."


암환자도 아닌 어머니가 인공 항문을 달고 싶다니 모두 믿을 수가 없었다. 아흔 살이나 된 어머니께서 마취를 견디고 그런 큰 수술을 받는다는 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따랐다. 자식들은 걱정과 염려로 하나같이 반대하며 자리를 떴다.


나는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날 밤 어머니 옆에서 함께 지내며, 조심스레 다시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일주일째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밥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거의 죽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계셨다. 변을 못 보시니 섬유질 섭취도 어려워져 악순환이 계속 되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간 너무 답답해 손가락으로라도 변을 빼내 보려 했다는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어머니의 힘겨운 고통이 느껴져,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남편과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큰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관장을 원하셨고, 나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시고 갔다. 어머니의 몸빼바지가 내려지고, 간호사가 관장약을 넣으며 내게 어머니 항문을 꼭 잡고 있으라 했다. 엉겹결에 비닐장갑을 끼고 어머니의 엉덩이 사이로 손을 쑥 넣어 항문을 막았다. 관장약을 막 넣은 후라 손가락에 움찔움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 듯한 경련이 느껴져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머이, 똥꼬에 힘 주이소! 간호사가 10분은 참으라 했심니더.“

”어머이 지금 싸면 안됩니더, 참으시소“


한 손으로는 핸드폰에 알람을 맞추고, 다른 손으로는 어머이 똥구멍을 막고, 있는 힘껏 버텼다. 손가락에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쥐가 날 지경이었다. 10분이 지나 알람이 울리자, 나는 막고 있는 손 그대로 어머니 엉덩이를 재빨리 변기에 앉혔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손을 떼자마자 "쭈왁" 하고 한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어머이 똥은 닦을 수 있지예?

"오야 나가봐라“


어머니는 볼이 발그레해지며 환하게 웃으셨고, 가슴까지 후련해진 그 미소에 안심이 되었다.

병원 밖으로 나서니 거리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들어갈 때는 보이지도 않던 벚꽃이 만개한 모습은 어머니의 미소처럼 환했다.


"어머이, 사진 한 장 찍어예." 나는 가장 화사한 꽃 가지 아래 어머니를 세웠다.

"사진은 말라꼬," 하시면서 며느리 성화에 포즈를 잡으셨다.

"아들이랑도 한장 찍어예" 남편도 함께 포즈를 잡았다.


그로부터 네 달 뒤,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벚꽃 아래 미소짓던 어머니와 찍은 사진은 마지막이 되었다. 돌아가신 뒤 두고두고 후회되는 것은 벚꽃 아래 나도 어머니와 사진 한 장 찍어둘 걸, ”피곤하다 고만 찍자“는 말에 더 이상 조르지 못한 것이다. 늘 곁에 계실 줄 알았고, 또 다른 봄이 올 줄 알았다. 어머니가 곁에 계실 때 더 많은 추억을 남기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꽃 같던 내 어머니



"어머이, 사진 한 장 찍어예."

흐드러진 벚꽃 아래 어머니를 세웠다.

"사진은 말라꼬" 하시며 포즈를 잡으신다.


"어머이, 웃으이소"

아흔 살 주름진 어머니가 웃는다

까맣게 염색한 뽀글뽀글 머리칼이 꽃잎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어머이 이쁘네예”

홀로 사진 찰칵, 아들이랑도 찰칵.

메느리는 찍느라 한 장도 못 건졌다.


며칠간 몸이 아파 어두웠던 어머니

그날은 아들 며느리 손잡고 표정이 밝았다.

봄날의 꽃처럼 환하게 웃던 내 어머니


뽀글뽀글 빠마머리로 오래오래 계실 줄 알았는데

여름 더위가 채 물러나기 전,

호호백발이 되어 시든 꽃잎처럼 사그라들었고


봄날 찍은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었다

흐드러진 벚꽃 아래 꽃 같던 내 어머니

사진 속 어머니가 나를 보며 손짓한다.


"아가, 너도 같이 한 장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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