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정 Nov 13. 2024

수염난 여자

나의 탈모치료기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칼로


수염 난 여자를 떠올리면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나의 탈모 치료에 관한 이야기다.


원래 머리숱이 많았던 나는 40대에 접어들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30대에 이미 흰머리가 생겨 염색을 안 하면 반백발이었고, 숱이 줄어드니 나이 들어 보였다. 어느 날, 지인들은 나에게 대놓고 머리숱이 적어 보인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머리숱이 휑하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머리칼이 줄었어?"


심지어 남편의 친구는 나이 들어 보인다며 외모를 지적했고, 그 말에 상처받은 나는 탈모 치료를 결심했다. 이름난 탈모 치료 병원을 찾아가 백발의 중년 의사를 만났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카락 나게 해 드릴께."


그가 처방한 약은 모발 영양제, 전립선 비대증 약, 그리고 고혈압 약이었다. 전립선도 없는 내가 전립선 약을, 혈압도 정상이었지만 고혈압 약까지 먹게 된 이유는 이 약들의 부작용이 바로 발모 효과라는 것이었다.


처방대로 매일 약을 복용했다. 한 달쯤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머리카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눈썹이 짙어지고 속눈썹도 두꺼워지더니, 콧수염과 구렛나루까지 자라났다. 코털마저 삐져나오기 시작했고, 팔과 다리, 등과 엉덩이에도 거뭇거뭇한 털이 수북했다. 다른 부위는 옷으로 가릴 수 있었지만, 여름에 노출되는 팔다리의 털은 신경이 쓰였다.


남편조차 나에게 도저히 못 보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샤워할 때마다 트리머를 이용해 털을 밀기 시작했다. 콧수염과 구렛나루를 제거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탈모약 복용을 반으로 줄였다. 다행히 털은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머리카락도 다시 줄어드는 문제가 생겼다.



프리다칼로는 자화상에서 하나로 이어진 눈썹과 콧수염을 강조했는데 그녀는 항상 여성성과 남성성 둘 다를 갖춰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미술사학자 헬가 프리그니츠-포다


 나는 프리다칼로처럼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그녀처럼 콧수염 있는 내 모습을 사랑할 자신도 없다. 탈모를 견딜 것인가 콧수염을 견딜 것인가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절충안으로 주 2회만 약을 복용하기를 선택했다.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가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중간 지점에서 적절히 타협하는 것이 인생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온몸의 털을 견디는 것보다 어느정도의 머리숱을 포기하듯이 과욕보다는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 나의 탈모치료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소한데 목숨 걸다 똥 밟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