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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변호사 Jan 06. 2021

'레깅스 판결'의 속뜻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이 되지 않을 자유

1.

지난 2014년 4월 28일, 한 남성이 귀가하던 여성을 아파트까지 따라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는 몰래 여성의 신체를 촬영했다. 여성은 우연히 피고인이 자신을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무서워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나중에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그가 촬영한 사진에는 여성의 얼굴은 나오지 않고 가슴을 중심으로 상반신이 촬영돼 있었다. 여성은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또 모자가 달린 회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 여성의 목 윗부분과 손을 제외하고는 외부로 노출된 신체 부위가 없는 상태였다. 얼굴 부위를 제외한 상반신 전체가 촬영되었고, 특별히 가슴 부위를 강조하거나 가슴의 윤곽선이 드러나 있지는 않았다.


해당 남성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됐다.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너무 당황스럽고, 무섭고, 수치스럽고, 기분이 나빴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제1심 법정에서도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이 사건 사진에 자신의 몸만 촬영되었기 때문에 성적인 느낌을 가지고 촬영하였다고 판단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원심인 서울북부지법은 피고인의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사건은 대법원에서 깨졌다. 2016년 대법원은 남성을 무죄 취지로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비록 피고인의 행동이 부적절하고 피해자에게 불안감과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임은 분명하나, 이를 넘어 피고인이 촬영한 피해자의 신체 부위가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사진은 엘리베이터 안에 피고인과 피해자만이 있을 때 몰래 촬영된 것이기는 하나, 피고인은 엘리베이터의 한쪽 구석에서 반대편 구석에 있는 피해자를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취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재미있게도 2016년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돌려보낸 이 사건은, 오늘 대법원이 판단한 이른바 '레깅스 사건'의 원심인 의정부지법이 무죄 판단을 내릴 때 참조했던 사건이었다.


2.

오늘 레깅스 판결이 다른 사건과 달라진 건 두 가지 정도다. △'성적 자유'의 의미(소극적으로, 의사에 반하는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가 분명히 설시됐다는 점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에 대한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 즉 두 가지가 중첩되면서 성폭력처벌법상의 가벌범위가 넓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결과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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