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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저씨 May 12. 2020

스티비 원더, Isn't He Lovely?

당신이 모르는 과거의 5월13일

과거로부터 배우는 오늘 : 위하고 알새과오

목차

병자호란, 끝나지 않은 비극

최근 S본부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더킹’이 소현세자 죽음을 기점으로 우주가 두 개로 나뉘었다는 설정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오히려 소현세자와 그의 가족 실제 스토리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비극적입니다.

소현세자는 일찌감치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병자호란에서 패한 후 동생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8년만에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인조는 여전히 명나라를 사대하는 입장에서 아들이 오랑캐 청나라의 문물을 익히고 와서 추종하는 것이 못 마땅했고, 나아가 청나라의 지지를 받는 아들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소현세자가 귀국 후 2달만에 학질로 급사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인조가 독살했다는 주장은 오늘날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의 사망 이후 부인 강빈 또한 시아버지인 인조의 누명으로 사약을 받았고, 아들 세명(12세, 8세, 4세)도 제주도로 유배당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올라 정통성이 취약했던 인조가 병자호란 패배로 무능함마저 드러내자 벌인 비극적인 역사,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너무나도 비극적이서 허구의 드라마로 각색되고 변주되는가 봅니다.  


사도와 소현, 그리고 카프카

소현세자의 비극 이후 약 100년이 지난 즈음 또 하나의 비극적 사건, 아버지인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조와 소현세자의 갈등이 외부로부터 촉발된 것이라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은 다분히 내부로부터 점화된 사건이었습니다.

선조는 당시의 나이로는 상당히 늦은 41세에 사도세자를 얻고 천하를 얻은 듯 기뻐했습니다. 당연히 아들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던 세자는 칼을 더 좋아했고, 영조를 옹위했던 노론보다 소론과 더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에 영조의 세자에 대한 압박은 날로 거세졌고, 결국 세자는 정신병적인 기행과 추행을 일삼으며 반항하다가 뒤주에 갇혀 9일만에 사망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아들, 사도세자와 소현세자의 역사를 접할 때마다 몇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 권위를 얻고 지킨다는 것의 의미, 권위 앞에서 초라해지는 인간,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도 떠오릅니다.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 역할을 하던 그레고르가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그 이야기…


한민족의 실력을 외친 1913년!

1913년 오늘 안창호가 유학생 중심 민족운동단체 흥사단(興士團)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하였습니다. 흥사단은 민족 부흥을 위한 힘을 기르는 데 궁극의 목표를 두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민족 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덕(德), 체(體), 지(知)’를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인격수양과 실력양성을 강조하다 보니 싸움을 회피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단원들은 안악사건을 비롯하여 105인사건, 3.1운동, 동우회 사건 등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고, 국민교육과 계몽에서 일익을 담당해나갔습니다.

그러던 1937년에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안창호를 비롯한 200여명의 단원이 검거되어 강제 해산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흥사단 창립 이후 107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코로나19팬데믹 속에서 높은 시민의식과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세계적인 모범과 표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부흥을 위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외치던 도산 안창호선생이 하늘에서 보신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하실까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끝날 때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야 진짜 실력이겠지요! 


스티비원더, Isn't He Lovely?

현존하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지만, 미국의 팝 스타 ‘스티비원더’는 최악의 장애를 극복하고 최강의 능력을 과시한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충분히 평가할 만 합니다. 최저 빈곤층 흑인 어머니에게서 미숙아로 태어난 그는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며 생명을 건졌지만 시력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최악의 운명과 싸워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 결심하고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수많은 악기를 배우며 음악 실력을 키웠고, 약관 21살에 이미 셀프 프로듀싱을 선언하며 흑인 음악계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더 큰 장애가 많았습니다.

인종차별은 물론이거니와 ‘시각장애는 가짜’라는 악성루머까지 돌자, 그는 흑인인권운동가 루터킹 목사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평화와 인권운동에 더욱 앞장 섰습니다. 그리하여 2009년에는 유엔에서 ‘평화의 메신저’라는 타이틀과 함께 평화대사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그와 그를 사랑하는 팬으로써 세상에 묻고 싶습니다.

“Isn’t He Lovely?” 

모든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였지만 사랑스런 딸의 얼굴은 미치도록 보고 싶었나 봅니다. 딸의 탄생에 감격하여 의문형 가사로 만든 노래 ‘Isn’t She Lovely?’에서 사랑스럽고 예쁘지 않냐고 세상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그의 소울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울립니다.


<스티비원더 라이브 공연 : I wish & Isn't she lovely>

https://www.youtube.com/watch?v=x9gXgiHSs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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