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을 위해 굳이 감사하기로
멈춘다고 죽지는 않던데
요즘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정신건강이다. 신체의 고통 앞에서는 덜컥 겁이 나면서도 정신의 고통 앞에서는 그렇게나 관대했다.
길게 이어지는 우울감 앞에서도 우울감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았고 신경성으로 인한 두통 앞에서도 진통제 한알을 입 안에 털어 넣을 뿐이었다.
몸이 좋지 않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컨디션이 올라올 때까지 쉬어버린다. 아프면 곧바로 병원에 가 처방을 받았고 다이어트로 인해 빈혈이 올라치면 영양제에 철분을 추가하였다. 한때는 하루에 먹는 영양제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 오히려 간에 무리가 올까 염려되어 가짓수도 줄였다.
신체 건강에 정성을 들이는 것에 비해 정신건강에 소홀함을 보이며 건강에 심한 차별을 두었다.
심리학에 관심이 생겨 작년부터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심리학과는 전혀 무관한 전공과 일을 해왔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공부였다. 강의를 들으며 처음으로 ‘심신상관’이란 단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국어사전에는 [심신상관 心身相關 : 마음의 움직임이 생명 활동의 움직임과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는 이론. 기쁨이나 노여움을 느끼면 신체에도 그것에 대응하는 상태가 나타남을 이른다. ]
쉽게 말해 몸과 마음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게 되면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신체적 질병이 길어지면 정신적으로도 지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날을 되짚어보면 난 애인과의 이별로 슬픈 나날을 보내며 살이 빠지기도 했고, 슬픈 와중에 몸살이 나 앓아누운 적도 있었다. 지금에 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이별 다이어트만큼 확실한 다이어트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식욕이 없고 막막한 감정이 들었다, 몸이 아플 때 누워있다 보면 걱정거리만 생각나 두통으로 이어진 적도 있는 것을 보니 몸과 마음은 확실하게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 전 같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다독을 즐기는 편이었다. 편식 없이 여러 장르의 책을 읽었는데 그중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중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이 있었다.
'감사일기를 써라!'
사실 난 익숙한 감사에는 굳이 감사를 하지 않는다.
타인이 베푼 친절에만 감사함을 전달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루에 무조건 몇 가지씩 감사함을 찾아 써야 한다니 오글거리기도 하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사소한 몇 가지라도 감사함을 가지려고 한다. 별것 아닌 일상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지면 세로토닌이란 호르몬이 나온다니까 굳이 감사한 일들을 생각한다.
아침에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는 것이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감사함을 가져본다.
‘오늘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지 모를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것이 신일 수도 아니면 감사함을 갖기로 한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일어나는 것은 똑같지만 감사함을 되네이면 짜증보다는 말 그대로 감사함이 든다. 사소한 일들에 감사함을 갖다 보니 전보다 짜증이 줄어든다.
굳이 웃음이 나지 않아도 한번 웃어본다. 욕실에서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보고 재미있지 않은 농담에도 웃어본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웃기는 거다. 감사함을 가지려 하면 감사하지 못할 일이 없다.
난 브런치 작가 신청에 몇 번이고 떨어졌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글을 브런치에 쓸 수 있다.
‘ 브런치 감사합니다. ’
나의 건강한 신체와 정신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좋은 호르몬 팍팍 돌게 굳이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감사에 대한 글을 쓰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 기분이 전달되면 좋겠다.
' good luck to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