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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영 Jun 27. 2022

어떤 차이는 과장되었고 어떤 차이는 지워졌다

성차보다 개인차가 더 중요하다

여성과 남성은 많이 달라 보인다. 어릴 때부터 ‘여자애라서’, ‘남자애라서’라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성염색체가 대부분 XX, XY로 나뉘고, 이것이 생식기관, 호르몬, 체격 차이와 같은 신체적 차이를 뚜렷하게 만드는 만큼, 두뇌와 그에 기반을 둔 성격 및 행동 특성 차원에서도 명확한 차이를 만들 것 같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젠더는 모자이크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 교수 연구팀은 뇌 구조에 대한 정보를 담은 이스라엘 남녀 MRI 영상 281개를 가지고 회백질 영역 116곳의 부피를 측정했다. 평균적으로 성차가 나타나긴 했지만 각 영역별로 성별 분포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성차가 큰 영역조차도 너무 많이 겹쳐서 ‘여성’ 또는 ‘남성’ 뇌라고 정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성차가 큰 10개의 영역을 선택했고, 각 영역 중 평균값이 여성이 더 크면 여성 측정치 중 제일 큰 1/3 범위를 ‘여자 쪽’, 남성 측정치 중 제일 작은 1/3을 ‘남자 쪽’, 두 범위 사이를 ‘중간’으로 정의 내린 후 281개의 영역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여자 쪽’, ‘남자 쪽’ 점수만을 가진 샘플은 고작 2퍼센트였고, 나머지는 ‘중간’, ‘여자 쪽’, ‘남자 쪽’의 혼합이었다. 특히 ‘여자 쪽’과 ‘남자 쪽’ 특징을 모두 가진 뇌는 약 1/3였다고 한다. 여자 쪽을 분홍색, 남자 쪽을 파란색으로 색칠했을 때, 많은 사람의 뇌는 분홍색과 파란색의 모자이크 조각들로 이루어진 다채로운 색을 보여준 것이다.      

추가로 세 세트의 데이터(다 합쳐 총 1400개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유사한 결론이 도출됐다. 우선 성차가 가장 큰 영역이 국가별로 차이가 있었다. 성차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 조건이 다르고 이것이 뇌의 회백질 크기 차이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완전한 ‘여성 뇌’, ‘남성 뇌’를 가진 사람의 비율은 데이터 세트에 따라 비율이 1~8퍼센트 정도였고, 두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의 비율은 23~53퍼센트였다. 회백질 부피 차이 연구뿐만 아니라 두뇌 배선(wiring) 차이를 연구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다채로운 모자이크 뇌를 그릴 수 있었다.      



성별 외에도 여러 요인이 성격적/행동적 특성에 영향을 준다

주목할 점은 상기 결과는 성인 뇌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배제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의 뇌보다도 가소성(neural plasticity)이 매우 크다. 뇌는 매우 유연하고 평생을 거쳐 변화한다. 뇌가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행동으로 인하여 뇌가 변하기도 한다. 뇌의 가소성과 관련해서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이 자주 소환된다.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은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런던 도심의 도로를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데만 몇 년씩 걸린다고 한다. 이들은 일반 사람보다 운전 능력과 관련된 해마의 용량이 더 크며, 경력이 많을수록 이에 비례하여 해마의 크기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더 짧은 경험도 뇌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각 손가락으로 특정 순서에 따라 엄지손가락을 두드리는 단순한 과제를 매일 15분씩, 3주만 해도 이와 관련하여 활성화되는 두뇌 피질의 양이 증가한다. 반복적인 행동이 뇌를 변화시킨다. 성인에게 나타난 뇌의 차이가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인간의 뇌와 이에 기반을 둔 성격적/행동적 특성은 생물학적인 성차인 성별뿐만 아니라 젠더(사회적 성역할 규범에 따른 성차), XX/XY 염색체 이외의 유전적 요인, 양육 배경, 환경적 스트레스 요소 등 수많은 요인이 관여하여 형성되며 변화의 가능성도 크다.     


젠더 고정관념이 발달에 미치는 영향

특히 발달하는 아이들은 젠더 고정관념이나 그와 관련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이러한 사회문화적 힘이 뇌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 스스로도 젠더 고정관념을 체화하여 그에 따라 행동을 조정하면서 젠더화된 뇌 발달을 가속화시킨다. 아기들은 생후 6개월경부터 여자 얼굴과 남자 얼굴이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매우 어린 나이부터 성별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해서 성별 구별 능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범주화 능력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을 타고난다. 이에 어떤 기준이든 간에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 자체를 상당히 좋아한다. 


아이들은 누군가가 명시적으로 젠더 규범을 알려주지 않더라도 매우 이른 나이부터 어른의 젠더 규범에 근거한 말과 행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사람을 성별로 분류하고, 특정 성별과 특정 행동 특성을 짝지으며 젠더 규범을 무의식적으로 습득한다. 주변 어른들은 근거가 없음에도 뱃속에서 아이들이 보이는 태동조차 성별에 따라 해석한다(“남자애라 발길질을 많이 하네”). 그리하여 만 3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도 여자와 요리, 집 청소, 립스틱 바르기, 속눈썹 붙이기를, 남자와 자동차, 나무 타기, 싸움, 물건 만들기 등을 연관 짓고, 남자는 강하고, 크고, 빠르고, 시끄러운 반면, 여자는 약하고, 작고, 부드럽고, 조용하다는 식으로 남녀가 서로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불어, 이른 나이부터 젠더 규범에 맞는 행동은 독려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여자애/남자애가 그러면 안된다'며 저지된다. 강화되는 자질이나 행동은 더욱 발달하고 그렇지 못한 자질이나 행동은 상대적으로 발달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분리할 수 있겠는가? 태어난 순간부터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어린아이들조차 이미 상당 부분 젠더화되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로 인하여, 아이들은 같은 성별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려고 하면서 해당 성별 집단의 특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내면화하고, 다른 성별과의 차이점을 더 크게 인식하며 다른 성별에 배타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적어도 연애에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 주변 어른과 또래집단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도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어디까지 유전의 영향이고 어디까지 환경의 영향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적인 성차가 여자와 남자 간 의미 있는 수준의 뇌의 차이와 이에 기반을 둔 성격적/행동적 차이를 절대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성격적/행동적 특성이 전적으로 사회화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다만, 젠더 규범의 영향이 배제된 진공 상태로 성장하는 않는 이상 어떤 성격적/행동적 특성과 관련해서든 어디까지 유전의 영향이고, 어디까지 환경의 영향인지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젠더 개념이 이전보다 널리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염색체 구성과 생식기관 차이와 같은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하여 여자와 남자의 성격적/행동적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여성/남성 구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바람에 자신의 다른 성별적 특성을 억압하거나 부끄럽게 여겨 자기 소외 현상이 생기고, 다양한 잠재 능력을 계발시키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뇌와 그에 기반을 둔 인간의 행동 특성의 ‘성별’을 굳이 따지자면 간성(intersex)에 가깝다. 인간의 행동적/성격적 특성은 두 가지 성별로만 분명히 나뉘지 않으며, 성별을 포함한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 다양한 특성들로 이루어진 무수한 하위 집합들로 구분될 수 있다. 젠더 고정관념에 치우쳐 능력 계발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남자아이들도 관계지향적 태도를 기를 수 있고 감정 표현을 풍부하게 할 수 있으며 돌봄 노동을 잘할 수 있다. 여자 아이들도 자기주장을 잘 피력할 수 있으며 수학과 과학을 잘할 수 있다. 어떠한 연구에서도 이러한 특성들 간에 여성과 남성 간의 선천적인 차이가 있다고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의학과 건강 문제와 관련하여 성별 이분법의 문제점

또 하나 중요하게 언급하자면, 성별/젠더 이분법적 태도는 의학과 건강 문제와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학 및 약리학 연구 역사에서 남성(수컷 동물)의 몸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해왔고 최근까지도 그러한 흐름이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여성을 배제하는 이유로 서로 충돌하는 설명을 제시해 왔다. 1) 생식기관을 제외하면 여성과 남성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남성만 연구해도 그 결과를 여성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정말로 없다면 배제할 이유도 없다. 다른 이유는, 2) 여성과 남성이 ‘너무 다르고’, 월경 주기에 따라 변하는 호르몬 농도나, 임신이나 출산, 폐경 등의 상태에 따라 너무 많은 변수가 끼어들어 여성들 간에도 차이가 너무 커서, 연구 대상의 균질성을 파괴하고 연구 결과를 명확하게 해석하는 데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배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제한 그 이유는 바로 여성을 포함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남성 인구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결과, 여성의 많은 수가 전형적인 '남성의 증상'과 차이를 보이는 경우 제때 진단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약이나 치료의 효과성이 떨어지고 부작용이 생기는 등의 문제를 겪어왔다(현재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심장질환일 것이다. 심장질환은 남성의 질병으로 여겨지며 갑자기 ‘악’ 소리를 내며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지는 모습이 대표적인 표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여성 사망의 가장 빈번한 원인이 바로 심장질환이며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심장질환이 ‘전형적인 남성의 증상’인 가슴 통증이 아니라 허리 통증, 메스꺼움, 두통 등의 증상으로 더욱 많이 나타난다.  물론 남성의 경우에도 전형적인 '여성의 증상'이 나타날 때 진단이 지연되어 잘못될 위험이 커진다. 우리가 성별 고정관념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의 증상', '남성의 증상'이라고 칭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인간 생리와 성별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증상이나 치료효과의 차이점을 강조하면, 여성과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집단이며, 여성과 남성은 (성격과 행동 특성 포함해서) 서로 크게 다르다는 주장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는 의학 및 약리학 연구에 여성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서 ‘여성과 남성은 역시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흐름에 힘이 실리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그런데 어떤 증상이나 치료 반응에 성차가 나타난다면, 유전자나 호르몬 때문인지, 아니면 신장, 체중, 근육량, 신체활동, 직업, 취미 등 여성과 남성이 평균적으로 다른 여러 부가적인 요인 때문인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어떤 것은 성별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회화의 결과로 나타난 젠더 차이일 수 있다. 행동적/성격적 특성의 차이가 단지 성별로만 결정되지 않고 많은 요인이 관여되는 것처럼 신체적/정신적 건강 또한 마찬가지이다.      


성별 이분법을 건강 문제에 경직되게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2013년 미국식품의약국은 대중적인 수면제인 졸피뎀을 썼을 때 여성 15퍼센트(남성 3퍼센트)가 다음날 나른함을 느끼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여성과 남성 집단에 차이 처방 용량을 남성은 그대로 두고 여성은 반으로 줄였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체지방과 근육의 비율’과 같이 여성과 남성이 평균적으로 다른 변수가 성차의 주 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상기 비율로 분홍색 상표의 여성용과 파란색 상표의 남성용이 출시되고 있는데, 근육이 별로 없는 과체중 남성은 잘못된 용량을 먹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또 다른 예로, 심장부전에 대한 어떤 치료법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후속 연구 결과 성별보다는 ‘신장이 작은’ 환자에게 이 치료법이 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신장이 작기 때문에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법으로 잘못 해석된 것이다.
정신건강 문제인 산후 우울증의 경우, 여성의 문제로 인식되어 남성에게는 병명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2018년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기 출산 전후에 아기 아빠 또한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혀지면서 이 명칭에서 젠더의 의미를 제거하는 입장도 생겼다(그러나 여전히 정신과적 진단 편람에는 산후우울증은 여성의 질병이다).     


여성 인구를 의학 및 약리학 연구에서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곧 여성 인구에서 성별을 포함한 여러 요인의 영향으로 발현되는 건강 상태의 ‘다양성’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양한 여성 집단을 연구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성별이 결정적인 특성이 되는 신체적/행동적/성격적 특성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너무 많기 때문에, 여성/남성과 같은 이분법보다는 인간의 생리와 성별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나 행동적/성격적 특성은 우리가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달리 교육과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화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은, 인간을 여성/남성보다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별을 키, 몸무게, 머리색, 피부 특성과 같은 다른 생물학적 특성과 크게 다르지 않게 봐야 한다. 습관적으로 ‘여자라서’, ‘남자라서’라는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두자. 아이를 기르거나 아이를 많이 접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여자애라서’, ‘남자애라서’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하자. 아무리 개인적인 수준에서 아이들을 위해 젠더-프리한 환경을 만들려고 애쓰더라도 여전히 강력하게 젠더화된 사회에서 아이들은 피할 수 없는 젠더화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성차보다는 개인차를 강조하고 고정관념에 반하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는 교육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나마 젠더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


참고문헌

<젠더 모자이크>, 다프타 조엘, 루바 비칸스키, 한빛비즈, 2021.

<핑크와 블루를 넘어서>, 크리스티아 스피어스 브라운, 창비, 2018.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 한문화, 2019.

* '젠더'와 '성별'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쓴 점에 대해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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