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북토크 후기
어제 저녁 상담이 취소되어 창비에서 진행한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 및 유가족 인터뷰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북토크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동생을 잃은 유가족 두 분과 인터뷰어로 참여한 두 분을 모신 자리였고 두 분의 사회자가 1, 2부로 나눠 매끄럽게 대담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말들이 많았지만 인터뷰어로 참여한 고 이한빛 PD 어머니께서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 남겨진 포스트잇에 적혀 있었다며 공유해 주신, "기억의 힘은 세다"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참사 1주년을 앞둔 요즘 보면 핼러윈 행사를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입니다. 선의로 해석한다면, 생존자와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참사의 충격을 겪은 사람들이 자극되지 않게 조심하고 나름의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는 의도에서 핼러윈 행사를 자제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핼러윈 행사를 취소하고 조용히 지나가는 식의 소극적인 애도의 방식은 너무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침묵은 10.29 참사를, 그 생존자와 유가족을, 참사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이태원과 핼러윈을 지우는 행위로도 느껴집니다.
왜 이러한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지 생각해 보면,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와 연대의 마음도 있겠지만, 10.29 참사와 같은 큰 고통에 대해 느끼는 피로감도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마음이 있더라도 내 삶이 고단하면 할수록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뿐더러 신경 쓰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힘드니까 외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좋지 않은 감정을 피하려고 하는 자기 본위적 심리도 있습니다. 괜히 핼러윈 행사를 하거나 관련 물건을 팔았다가는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골치 아파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이해는 갑니다. 저부터 그런 면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떤 이유든 조용히 애도한다며 참사에 대하여 침묵하는 일은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10.29 참사 지우기에 크고 작게 기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1주년이 다가오는 지금 이 시점까지도, 참사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사과, 책임자 처벌은 없었습니다.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입니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은 놀다가 죽은 사건이 아닙니다. 일상을 살다가 일어난 참사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무얼 하든 안전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놀다가 죽었다"라는 식의 말은, 인간에 대한 이해나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2030의 놀이 문화를 하찮게 여기는 극소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꽤 많은 선량한 사람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생각을 품은 듯한데, 이는 (이상한 짓 하며 놀다 죽을 만큼) 어리석은 누군가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지, 자신이나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고 싶어 하는, '자기방어 기제'에서 비롯된 생각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리 자기 위안을 하려 하더라도, 참사의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우리 모두의 의식, 무의식에 크고 작은 상흔이 남았습니다. 내가 피해를 입어도, 세상이 말하는 소위 '정당한 피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냥 억울하게 죽음이나 피해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은 세상, 누구나 억울한 참사를 당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아픔이 (씁쓸하지만)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 이한빛 PD 어머니 말처럼), 그리고 보다 안전한 사회를 살기 위하여 10.29 참사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조용히 지나간다면,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투사가 될 필요도 없고, 각자의 위치에서, 여력이 되는 만큼, 어떠한 형태로든 10.29 참사에 대해 기억하고 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 중 하나로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유가족 협의회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되고 유족분 중에서 시간이 맞는다면 기꺼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최근 받은 원고료로 오늘 스터디원 13분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한 권씩 선물해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핼러윈과 이태원을 지우기보다는, 1부를 이끌었던 사회자의 말씀처럼 애도와 행사를 양립시킬 수 있는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든지 축제를 즐기면서도 159개의 별이 된 이들 기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