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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Jan 26. 2023

겨울 이야기

계절의 기록 #4

11월에 코로나에 걸렸다. 남편이 먼저 확진을 받고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소란을 떨었는데 이튿날 바로 나도 확진이 되고 나니 어차피 한 번은 걸릴 거였다며 담담해졌다. 약을 한가득 받아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앞으로 일주일간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답답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자가격리는 처음이라 그런지 묘하게 기분이 들떴다. 집에 있는 김에 일찍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싶어서 가랜드도 주문하고 12월 1일부터 하나하나 뜯으며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고조되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 줄 어드벤트 캘린더도 주문하며 신났다. 첫날은 그랬다. 바로 밤부터 증상이 심해져 내리 나흘을 누워있을 줄은 그땐 몰랐지. 몸은 아팠지만 우리의 할 일은 그저 잘 먹고 잘 쉬는 것이었다. 목표는 뚜렷하고 부담은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매일 흐렸는데 집안은 불빛으로 환하고 밥때마다 국을 끓이면서 올라오는 김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 위에 로브를 걸치고 고양이 세수를 했다. 입맛은 없었지만 열심히 밥을 해 먹고 찡그리며 알약을 입안으로 털어 물과 함께 꿀꺽 삼키고 영화를 보다가 낮잠에 빠졌다. 약 기운이 떨어져 정신이 돌아오면 테이블 앞에 앉았다. 캐럴을 틀어놓고 빠르게 배송된 크리스마스 가랜드를 조립하고 다이어리에 일기를 적고 남편이랑 서로 내가 더 아프다며 싱겁게 끝날 말다툼을 했다. 그리고 다시 밥을 하고 약을 먹고 영화를 보다 잠에 빠지고. 나른하고도 안락했다. 그 일주일이 올겨울의 시작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아무 걱정이 없었다. 집에서 남편과 함께 삼시세끼와 약만 잘 챙겨 먹으면 됐던 시간은 자가격리보다는 이른 겨울의 휴가였다. 미리 당겨쓴 크리스마스 휴가.   




격리가 끝나고 남편은 직장으로 돌아갔다. 나도 책상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코로나 증상은 많이 없어졌지만 기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다. 자가격리는 끝났지만 집을 벗어나지 못한 채 달이 바뀌었다. 12월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몸은 여전히 가라앉은 상태였지만 눈이 내리는 날마다 기분만큼은 좋았다. 눈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눈 오는 날이면 비상근무를 서야 하는 조가 아닌가 긴장해야 했던 공무원 생활은 진작 끝이 났는데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나는 눈 내리는 풍경을 편하게 즐기지 못했다. 심지어 집안에서조차 창밖을 바라보며 이상한 불편함을 느꼈는데 아마도 그건 쌓인 눈을 삽질해야만 했던 경험을 통해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을 치우기 위해 수고하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이 눈송이보다 더 또렷하게 내려와서가 아니었을까.


작년에 공무원 회상기를 출간하며 그간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정리됐는지 눈이 쌓인 길을 훨씬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밭을 뒹굴지는 않았지만 눈 위를 뽀각뽀각 소리를 내며 걸었다. 카페에 앉아 통창으로 아침하늘에 날리는 눈을 황홀하게 구경했다. 커다란 눈송이가 끝없이 쏟아지던 까만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봤다. 고생하며 눈을 치우고 있을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으며 나는 나대로 눈을 다시 좋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내릴 때마다 조금씩 사라졌던 기력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1월, 소한과 대한 사이에 있는 생일을 맞이할 때면 칼바람에 얼굴이 쓰라리고 귀가 빨개지고 발끝에 감각이 없어지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기념외식을 하기 위해 외출을 할 때마다 몸을 웅크리고 매운바람에 뛰듯이 걸으며 한겨울에 태어난 진짜 겨울아이의 생일을 맞이했는데. 생일선물로 받은 새 패딩을 입고 친구와 밥을 먹으러 만난 올해 생일은 확연히 봄날이었다. 어디선가는 진짜 개나리가 피기도 했다는데 두꺼운 패딩을 입은 몸 안쪽에서 땀이 몽실몽실 차올랐다. 태어나서 이렇게 따뜻한 생일은 처음이었다.


내 짐작이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태어난 날부터 올해 생일까지의 기온을 검색해봤다. 내가 태어난 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6.5도, 최고기온은 -1.2도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의 생일은 최저 -13.1도, 최고 -3.2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생일은 꽤나 날이 푹해서 최저 0.5도, 최고기온이 9.6도나 했다.  공무원이 되어 처음 맞이한 생일은 최저 -12.9, 최고 -7.3도. 사직하겠다고 엄마아빠한테 말했던 생일의 최저기온은 -15.3도 최고는 -5.4도. 올해 나의 생일 서울의 최고기온은 12.5도. 정말 제일 따뜻한 생일이 맞았다. 생일케이크의 초를 끄며 소원을 빌 때 기후이변으로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빌었어야 했는데 그걸 까먹었다.




'아직 한참 더 살고 싶은데, 백세인생의 반도 못 왔는데. 힘들게 다시 눈을 좋아하게 됐는데.' 라는 걱정은 겨울이 정신을 차리면서 해소됐다. 설연휴의 끝, 최저 기온이 영하 17도까지 떨어졌다. 혹시라도 수도가 동파되지 않을까 수돗물을 졸졸 틀어놓고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겨울은 추워야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앞으로도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기를 바라며 옷을 단단히 입고 수영장에 갔다. 추워서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했더니 설연휴 동안 수영장에 가지 못하고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운 수영인들이 몰려들어 여름같이 북적였다.


수영을 마치고 머리를 잘 말리고 나왔다. 이제 막 해가 넘어갔는지 낮은 산 뒤로 잔광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다. 마스크에서 새어 나오는 입김이 눈썹에 작은 얼음알갱이로 맺혔다. 기모 바지 안으로 들어온 공기에 무릎이 따가웠다. 춥다. 너무 춥다. 그런데 추우면 추울수록 살아다는 사실이 시리게 실감난다. 눈앞이 한없이 맑아진다. 요만큼의 거리낌도 없이 오직 신기하고 기쁜 마음으로 겨울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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