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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Sep 08. 2023

어쩌면 기다리고 있던 불운

자립작가 지망생입니다 #3

비가 며칠째 계속되다 날이 화창하게  토요일 오전외출을 나가기 전에 짐을 챙기려고 옷방  작업방으로 쓰고 있는 작은  문을 열었다불쾌한 냄새가  밀려왔다  전쯤인가 벽장 천장에서 희미하게 물이  흔적을 발견했는데 바짝 말라있어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라 다급하게 벽장문을 열어젖혔다.  한쪽벽이 모두 젖어있었고 까만 곰팡이가 꽃을 피웠다누수에 곰팡이 파티라니 갑작스러운 봉변에 당황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것이 왔구나 차분했다사실 그게 무엇이든 조만간 무슨 일이든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미신도  믿지 않고 꿈도 개꿈만 꾸지만  예감만큼은 분명했다.


직장을 다니며 처음으로 독립출판을 준비할 때였다작업에 집중할 공간이 필요했다거실에 테이블이 있지만 고양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뛰어올라 산만했다옷방을 작업실로 쓰기로 했다작은 책상을 주문했다공들여 책상을 조립하고 옷장과 서랍장 사이에 완성된 책상을 끼워 넣으며 신이 났다이제 준비완료그리고 드디어 맞이한 주말 아침눈을 떴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는 거죠가벼운 통증이 아니었다병원을 다녔지만 망가진 목과 어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육체의 고통이 직장생활에서 오는 마음의 고통과 합쳐지는 바람에 휴직에 이르는 트리거가 되어버렸다작업이 문제가 아니었다옷방에 놓인 새책상에는  계절이 지난 후에야 앉아볼  있었다징크스의 시작이었다.





 뒤로 벼르고 벼른 작업에 착수할 때마다 일이 생겼다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쓰기 시작하고는 새거나 다름없는 맥북에 480밀리리터짜리 텀블러에 가득 담긴 물을 쏟았다직장을 다닐 때도 비싸서 사지 못했던 맥북이었다원대한 작업생활을 위해 퇴직금으로 마련한 고사양의 비싼 노트북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안녕을 고해야 하는 것인지 수리를 기다리며 했던  마음고생이란적지 않은 수리비를 들여 노트북은 간신히 살아났지만   소중한 맥북은 소음과 발열이 심해져 컨디션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작고 소중한 미물들에 대한 에세이를  때는 한포진에 걸렸다오른쪽 손바닥에 오돌토돌한 작은 수포들이 수십 개나 돋았다노트북에 물을 쏟는 것보다는 심적 경제적 타격이 덜했지만 아프고 간지럽고 불편했다신경이 모두 손바닥에 쏠려  쓰는 일에 집중을  수가 없던  물론.


이왕 징크스가 생길 거라면 폼나는 모양이면 좋으련만김연아 선수가 현역이던 시절 나는 피겨 시즌이 시작되면 ISU 피겨 그랑프리 시리즈를 비롯한 국제대회를 열심히 챙겨보고 피겨 스케이팅 강습까지 받을 정도로 팬이었다. 당시에 피겨계에 돌던 의상에 대한 징크스가 있었다빨간 의상을 입은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동계올림픽에서는 파란 의상을 입은 선수가 금메달을 딴다는 이야기지금  징크스는 깨졌지만 김연아 선수가 2009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붉은색 의상을 입고 1위를  다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푸른색 의상을 입고 금메달을 땄을  김연아 선수가 마치  징크스의 서사를 완성한 것처럼 극적인 감동을 받았다같은 색의 의상을 입은 선수들이 한때 연이어 경기에서 1등을  것은 그냥 우연이고  당시 김연아 선수의 기량은 최고여서 어떤 의상을 입어도 좋은 성적을 냈을 거라고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소박한 무명의 자립작가 지망생이기에 올림픽 금메달같이 웅대한 성공은 감히 바라지도 않지만 떡고물이 떨어지면 받아먹을 의향은 있다작업 초반에  좋은 일이 일어나면  책은 적어도 3쇄를(아직  번도 3쇄를 찍은 적이 없기에 이게 내가 바랄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성공이다)  찍게 되는 그런 수준의  징크스라면  좋겠다실제로는 목이 돌아가지 않아도 노트북이 침수돼도 한포진이 생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그저 작업 초반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면 문제를 수습하고 시간이 지난  다시 작업으로 돌아와  일을 끝냈을 뿐이다자잘한 질병과 사고는 언제라도 일어날  있는 일이며 하고자 하는 일에 전념을 다할  있겠다 싶을 싶은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우연이 고작   겹쳤을 뿐인데  불운에 의미를 부여해 버렸다.


어쩌면 나는 길고도 지난한 도움닫기를 마친  공중에 몸을 날리며 불안했을지도 모르겠다 작업을 마치기나  수는 있을까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자잘하고 성가신 일이 일어나 몸이 뜨자마자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낭패가 아닐  없다그런데 이상하다바닥에 나동그라질 때는 곤혹스럽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국 작업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좋아하는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확인한다액땜의 개념처럼  좋은 일이 있었으니 앞으로 하는 일은 잘될 거라는 근거는 없지만 효과 좋은 안정감이 덤으로 따라온다결과적으로 자잘한 고난을 동반했던 해당작업들은 어찌 됐든 모두 책의 형태로 나오며 마무리되었고 나는  같은 경험에 매료됐다.


그래서 이번에도 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새로운 작업을 시작했고 날이 선선해지며 에어컨이 없어 여름내 쓰지 못하고 있던 작업방을 다시 활용할  있겠다고 생각한 즈음기다리고 있던 일이 터졌다작업은 중단되고 나는 관리사무소와 윗집에 집의 상황이 심각함을 알렸다공사날짜를 잡고는 제습기를 돌리며 공사를 기다렸다윗집에서의 공사가 끝나 누수가 잡힌 다음에는 흉하게 얼룩진 벽지를 뜯어냈다누구에게도 반갑지 않을  해프닝을앞으로  달간 집중해야  작업을 이번에도 끝까지 완수할  있다는 강력한 징조로 믿으며 까만 벽에 곰팡이 제거제를 하염없이 뿌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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