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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Feb 11. 2018

나의 아이돌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한 때 빠순이들 사이에서 그런 문구가 있었더랬다.

‘니네 오빠들이 밥 먹여주냐?

아니.. 오빠들이 날 밥 먹게 해..’     


‘빠순이’의 가도를 달리고 있던 15살의 나에게 이 문장은 그저 피식할 만한 농담 수준의 말이었다. 암 그렇고말고. 오빠들이 있어서 내가 살지. 당시 부모님은 한창 빅뱅에 미쳐있던 내게 네가 영원히 빅뱅을 좋아할 것 같냐, 걔들은 너 모른다며 불붙은 내 열정에 자주 태클을 거셨다. 내 사랑은 시간 따위에 지지 않는다며 영원을 다짐한 빠순이는 서서히 그들을 잊어갔다. 내 일이었던 오빠들의 일은 남 일이 되었고 입시를 치르고 대학을 갔다.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거였던가 하다가 또 이렇게 빠르게 갈 수 있나 감탄하니 훅 하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시절 내 나이의 아이들을 마주한 과외 선생이 되었다.     


“쌤, 쌤은 가수 누구 좋아해요?”

도통 수업하길 싫어하는 학생 하나가 불쑥 물어보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누굴 좋아하더라. 빅뱅 참 좋아했는데.

“가수? 글쎄.. 넌 누구 좋아하는데?”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으며 폰화면 가득히 채워져 있는 하얀 피부의 미소년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방탄이요! 다 좋아하는데 정국이를 제일 좋아해요!”

“방탄소년단을 네가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것 같애?”

아뿔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에게 기분 나빠지는 순간은 어릴 적 그렇게 듣기 싫어했던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다.

“네! 물론이죠! 제가 처음으로 좋아한 아이돌이니까요.”

두고 보라는 듯 자신감으로 빛나는 얼굴. 오랜만에 만난 익숙한 그 얼굴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사람은 애정을 받아야 살아가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애정을 누군가에게 쏟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한다는 걸. 숱한 이별을 겪고 ‘영원’이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너무 쉽게 알아버린 나는 왜 사랑하는 것 마저 쉽게 포기한 걸까. 그저 영원을 믿었으면 될 것을.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문구는 옳았다. 그 시절 나에게 아이돌이란 밥 먹여주진 않아도 충분히 살게 할 에너지를 주었다. 그들과 함께 한 내 시절을 사랑했다. 보이지 않지만 vip라는 팬클럽 이름 아래 함께였고 내 세계였고 정체성이었다. 누군가는 고작 아이돌에 뭐 그렇게 의미부여를 하냐고 하겠냐만은. 적어도 그때의 우리는 진심으로 뜨거웠으니까.     

얼마 전 SNS에 올라온 태양의 결혼식 영상을 봤다. 만약 십 년 전에 이 소식을 들었다면 밤새 펑펑 울었겠지. 웃음이 나왔다.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표정들 사이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미소의 그가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 시절을 함께해준 그가 행복하다는 것이 다행이라 느껴진 밤이었다. 축하합니다, 나의 아이돌. 부디 앞으로도 쭉 행복하기로 해요. 당신들도,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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