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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예리 Nov 05. 2022

[뉴욕기] 16.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얻은 깨달음

체이널리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첼시마켓 근처에 있는 삼성 837으로 향했다. 근사한 공간이었고, 사람이 꽤 많았다. 행사가 제 시간에 시작하지 않아서 의아했다. 이윽고 행사가 시작되자 삼성넥스트가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 대표를 포함해 여러 연사가 나와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삼성 837에서 열린 행사에서 패널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데, 스마트폰 배터리가 거의 닳았다. 근처 카페에서 잠깐 충전을 하고 숙소로 가기로 했다. 내가 간 카페는 정말이지 와이파이가 안 터졌다. 다음에 해외 출장 갈 때는 esim이 아니라 와이파이 도시락을 가져갈 것이다. 그래도 내부 인테리어는 예뻤다. 

커피 한잔의 여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우버를 잡으러 나갔다. 길에서도 인터넷이 잘 안터졌다. 짜증이 나려던 찰나에 우버가 잡혔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놔두고, 호텔 맞은 편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따로 후기를 찾아보진 않았고, 외관과 야외 테이블이 마음에 들었다. (이날 오전에 숙소를 옮겼는데, 숙소 근처에는 아기자기한 식당이 많았다.) 종업원이 추천해주는 파스타를 시켰다. 혼자 먹기에는 거대한 양이었지만 괜찮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날 저녁이 첫 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스타와 곁들일 칵테일도 주문했다. 천천히 음식을 먹는데 갑자기 벅차올랐다. 언론고시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간절했지만 모든 게 불안정했던 시절이었다. 친구들 대부분과 거리를 뒀다. 계속 시험에 떨어지다 보니 절망에 익숙해졌다.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 의욕이 없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던 적도 있다. 그때는 내가 뉴욕에서 파스타를 먹을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고 지나갈 거라고. 지나고 나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

호텔 맞은 편 이탈리안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3년 뒤엔 아무런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얼마 전 아침 운동을 가다 학원 앞에 '전국 토론 대회 1등 ㅇㅇ중학교 ㅇ학년 ㅇㅇㅇ'이란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봤다. 학창 시절 내 이름도 종종 현수막에 걸리곤 했다. 태권도 금메달이나 수학경시대회 수상 등이었다. 현수막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학생 대표로 선서를 하거나 조회 시간에 상을 받으러 나갈 때도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만약 내 이름이 아닌 타인 이름이라도 불리는 날엔 세상이 무너진 듯한 기분이었다.


마찬가지로 ㅇㅇ중학교 ㅇㅇㅇ 학생과 경쟁을 하는 다른 학생 입장에선 그곳에 자기 이름이 걸리지 못해 정말 속상할 수 있다. ㅇㅇ중학교에 속한 학생, 이들의 학부모, 선생님들에겐 그 포스터가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 그러나 ㅇㅇ중학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내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포스터에 불과하다. 외집단에서 보면 어떠한 감흥도 주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누군가에겐 별 일도 아니고, 미래의 내게도 그다지 관심을 끄는 일이 아니게 될 수 있다. 내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추구하는 성과가 달라진다. 그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야를 넓혀 다양한 세상을 둘러볼 여유가 있다면 성과에 매몰되거나 으스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고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도, 성과를 이뤘다고 지나치게 자랑할 필요도 없다.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되 한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감격스런(?) 저녁과 함께 뉴욕에서의 취재 일정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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