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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Feb 03. 2022

아주 사적인 인터뷰 : Ep.1

일터에서 만난 사람 : 모든 걸 귀찮아하는 사람에 대해

 S와의 이야기를 어디부터 되짚어야 할까. 아주 사적인 인터뷰를 처음으로 기획했을 때부터 다른 사람은 빠트려도 얘는 꼭 넣어야겠다! 하고 생각한 것이 S였다. 숱하게 내 글에 등장하는 그녀의 삶을 되짚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의 술자리에. 거의 모든 술자리에 S가 함께 있다. 우리 관계는 술이 있다면 필연적이다. 우연이 겹치는 순간을 보통 필연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관계는 그런 말로는 안 된다. 설령 우리가 악연이더라도 필연이고, 인연이라면 더더욱 필연이지. 물론 술이 있다면. 사터뷰를 기획하자마자 그녀에게 연락을 했고, 단숨에 수락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S와 구실을 찾아 만나는 것은. 사실 뭘 하든 함께 있다는 것이 중요하게 된 지는 꽤 됐다.



 오랜만에 본 S는 머리가 많이 길어 있었다. 한결같은 내 머리와는 또 다르게. 이제는 좀 마음을 잡으려나 싶은 길이였다. 잘 살았냐고 농담을 건네다가 내가 사터뷰를 시작하겠다고 운을 띄웠다. S는 그러라고 끄덕였다. 분명히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가명을 어떻게 쓸 건지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S와 했던 대화는 여전히 드문드문 기억이 나기 때문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S라고 부르겠다.


다소곳하게 앉으라는 말에 나름 격식을 차리는 중


오랜만입니다. 사터뷰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 씨,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S 그냥 지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글쎄요. 이제 토익 점수도 끝나고 오픽 점수도 끝나서요. (사실 S는 이 대목에서 욕을 좀 했다. 한 삼 개월 전인가 이제 토익 점수가 얼마 안 남았어! 하는 푸념을 했던 것도 같고.) 어쨌든 평소와 다름없이 잘 지냈습니다. 이제는 취업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요.


그래요. (사이) 그럼 올해 하고 싶은 일이나 목표는?


S 너무 인터뷰를 막 진행하시는 거 아닌가..(웃음) 그래도 뭐. 목표는 역시 취업 하기인 것 같아요. 근데 이번에는 기간을 너무 길게 잡지 않고 2월 안에 취업하기! -아 1월이 아니라요?- 1월이면 내일모레가 끝인데요?- 이미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는 1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29일이었다- 2월 안에는 취업하고 싶어요. 너무 작지 않은 곳..이나 뭐 이런 거 상관없이 연봉 잘 주는 곳으로.


이제 회사의 비전이나 목표에 대한 생각은 좀 버리셨나 봐요.


S 원래 제가 예전에는 저랑 비전이 맞는 회사, 목표가 건실하고 좋은 회사. 추가로 연봉도 더 주면 좋고 하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이전에 지원하고 최종 합격까지 닿지 못했던 기업의 실태를 보고 나니까 그저 일 적당히 시키고 돈 적당히 많이 주는 회사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비전도 훌륭, 대우도 최고 심지어 연봉도 잘 주면 더더욱 최고지만요. 그러니까… 완전히 버린 건 아니지만 일단은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연봉 잘 주는 회사의 기준은 뭔가요?


S (웃음) 아니, 잠깐. 근데 인터뷰 준비해 오신 거 맞아요? 너무 중구난방에 사적인 것투성이 아닌가요? 어쨌든 ‘얼마 이상-이 부분은 비밀-’ 주는 데가 좋아요. 밀리지 않고 따박따박 주는 건 당연히 기본이고요.


사터뷰가 원래 좀 중구난방입니다. 뻔뻔하기도 하고. 그리고 사터뷰의 주제는 원래 사적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기획이에요. 그럼 뜬금없는 고정 질문을 하나 해 볼까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S 사랑이요? 제가 사랑을 해 본 적이 있어야죠. 저는 많은 것들을 사랑하지 않아서요. 그리고 뭐랄까. 사랑에 대한 제 기준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 까지는 될 수 있어요.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너를 좋아하거든? 근데 사랑은 아니야. 사랑은 나한테 우리 집 강아지뿐이야. 우리 집 강아지가 내 살을 와작와작 물어뜯어도 귀여워 죽겠는 얼굴만 보면 싫은 티조차 낼 수가 없고 피가 콸콸 나는데도 그 강아지를 끌어안고 싶어 지거든. 이런 사랑… 저한테 사랑은 이런 것뿐인데요.


성애적인 의미의 사랑은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S 아직은 없어요. 겪어 본 적이 없어서, 할 말이 없네요. 사랑이라는 게 뭐 같으신데요? 한 때 또 지독하게 사랑하셨잖아요. -나는 여기서 S의 말을 무시했다.-

그럼 본인의 꿈은 뭔가요?


S 꿈이요… 이것도 잘 모르겠는데요. 계속 집중 질문을 듣다 보니까 제가 저 스스로의 삶에 굉장히 관심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런 정도는 아니고. 꿈이라는 거에 대해 각 잡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지금 생각해본다면?


S 지독하게 질문하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거? 이뤄내고 싶은 거? 그 정도.


본인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


S 저는…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인터뷰 되게 어렵다. 평소에 대화하듯이 하면 될 것 같았는데. - 여기서 또 잠시 다른 이야기로 샌다. 30분 정도. - 어쨌든 생각하는 것도 귀찮고… 움직이는 것도… 저는 대체로 모든 걸 다 귀찮아하는 편이라 뭐가 귀찮냐고 물어보면 전부 다 귀찮아하는 사람이라서 대답할 말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럼 귀찮은데 저는 어떻게 만나시나요?


S 공격적인 질문이네요. 아무래도 이게 평소에 Y 씨가 얘기하는 사랑인가 보네요.(웃음)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서는 하지 않던 일을 하잖아요. 누워있다가도 연락 한 통에 달려 나오는.


혹시 제 첫인상이 어땠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S (S는 이 대목에서 좀 망설이면서 웃었다. 이걸 또 말해줘야 돼? 하면서) 아, 첫인상이요. 제가 몇 번 본인한테는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 아무래도 이 사터뷰를 읽는 분들은 모르시니까- 아, 네. 그렇죠. 첫인상. 아주 간추리자면 ‘얜 뭐야?’ 싶었어요. 저희가 처음 만난 게 거북이의 기적이라는 스터디 카페였는데, 당시에 면접 볼 때 아예 처음 봤었죠. 그때는 그냥 ‘서로 사이가 좋구나. 일하는 사람들끼리.’하는 생각만 하고 면접 분위기가 괜찮네, 가 전부였어요. 면접 분위기는 좋았거든요. 근데 텃세 이런 걸 걱정했다기보다는, 저는 원래 그런 걸 신경 안 쓰니까. 그냥 사이가 좋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진짜 첫인상은 그 이후인데 제가 일하고 있는 시간에 Y 씨가 갑자기 쳐들어오셨죠. 어딜 갔다 왔댔는데? -뉴질랜드요. 제가 한 달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왔었죠.- 맞아요. 그러고 뭘 넣어놓고 간다고 해놓고 계속 있는 거예요. 말을 계속 걸면서. 근데 말을 거는데 다 반말이야. 했어요? 이렇게 안 하고. 했어? 응~ 이런 식이었거든요.


제가 그 정도로 막 나갔을 리가 없는데.


S 아니요. 엄청났어요. 저는 초장에 반말하는 사람은 좀 봤는데 제가 진짜 웃겼던 건 두 시간이 넘게 반말로 떠들어놓고, ‘어 근데 나보다 나이 많지 않아요?’하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반말해도 되죠?’라고 한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어요. 아니 나를 처음 봤을 때 반말로 실컷 말해놓고. 그리고 이 얘기하면 맨날 기억 안 난다고 하시는데 저는 어떤 첫 만남보다 이게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확실하게 기억나네요. 첫인상은 결론적으로 ‘얘 뭐야?’였습니다.


그럼 혹시 지금은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 이제 그냥 일상이죠. 일상 중에 하나예요. 정말 신기한 건 제가 받아들이는 친구들의 바운더리, 그러니까 마음의 울타리가 상당히 높고 견고해서 ‘친한 친구’ 바운더리에 들이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거의 ‘친한’ 바운더리에 있기는 한데. 아마 그 바운더리가 열리고 들어오기 전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겠죠. 그런데 Y 씨는 … 비유를 하자면 바운더리가 열릴 새가 없이 거의 포크레인처럼 부수고 들어와서. 어느 순간 친한 친구가 됐어요. 10년을 만난 친구들만큼 친한 친구. 우리가 얼마 안 알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우리는 이 즈음까지 인터뷰를 녹취했는데, 이 이후에도 사십 분 가량의 인터뷰가 남아있지만 그중에 쓸만한 것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둘 다 취해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S는 취하면서 시간을 계산했다. 우리 얼마나 더 마실 수 있지? 얼마나 남았지? 코로나 시대의 술자리란 비대면이나 친구의 집이 아닌 이상 오랫동안 지속하기가 어려우니. S는 꼼수를 썼다. 그럼 영화를 보자. 주로 내가 먼저 하는 말인데, S는 오랜만에 디비디 방에 가자고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지도 않는 밤에. 고작 맥주 두 캔을 더 마시고 싶어서.

 아주 이동하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아 S에게 다시 물었다.

잠깐, 그러면 모든 걸 마치기 전에 ‘사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S 음… 인터뷰 이런 식으로 마쳐도 되나요? 저희 한 세 번은 더 만나서 얘기해야 될 것 같은데.


고정 질문을 빼먹을 뻔했네요! 첫 사터뷰, 후련하셨나요?


S 후련이랄 게 있나요? 저는 당신만 만나면 후련하고 즐거우니까 됐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거웠어요!


 결국 S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고, 우리는 술을 더 사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갈 때까지 술을 먹었다. 디비디 방에서 한 캔씩을 더 먹고, 나아가 두 캔씩 우리 집에서 더 먹고. 이미 1차로 인터뷰를 하던 술집에서도 각 두 잔, 그리고 두 병 정도 먹었으니 맥주 먹는 하마였던 것이지. 우리는 매 번 만나기만 하면 술을 과하게 먹게 되는데 S는 이제 우리 했던 얘기 또 하는 사이가 됐다, 고 이야기한다. 이전에는 서로가 없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는 만난 이후의 이야기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 지. 같이 살자는 이야기. 살게 되면 서로와 살겠다는 약속을 하곤 한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함께 살 이야기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다뤄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S는 항상 좋다고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근데 몰라, 우리가 같이 살 지는. 몰라!” 이래서 술 먹은 사람이랑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또 깨닫는다.


 우리는 좀 더 사적인 순간을 적을 필요가 있다. 좀 더 희미하지만 상세하게. 나중을 위해서. 나중에는 술기운이 돌지 않은 S에게 그래서 나랑은 어떻게 살 건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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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인터뷰 ep.1

모든 게 귀찮은 S 씨와 Y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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