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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27. 2022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마음을 늘어놓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터뷰를 진행하면서 제일 재미있는 순간이다. 저마다의 사랑의 정의가 있다. 사람들에겐. 물론 나에게도 그렇고. 사랑이 병이라고 대답한 가장 최근의 동이의 답변이 떠올랐다. 사랑은 병이죠. 죽어야만 고쳐지는. 그것도 맞다. 사랑은 꿈이라던 M의 답변도 타당하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지나가듯 물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던 때에 주와 희야의 답변도. 주는 사랑이 없다고 대답했고 희야는 사랑은.. 슬퍼. 하고 대답했다. 술자리였으니 다들 까르르 웃었지만 우리가 진지하게 이 이야기에 대해 세 시간 정도 이야기했다면 마무리에는 다 같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떠올린 것은 그저 내가 사랑이 뭔지 궁금해서였다. 사랑이 뭘까.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관계가 있다지만, 사랑에 대한 단순한 정의 말고. 각자가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지켜오는 사랑. 매 번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어도 모르겠다. 보통 모든 사람들의 말이 맞다. 사랑의 정의가 무궁무진하다. 그럼 사랑은 여러 개일까? 사랑, 사랑 다시, 사랑 제곱 이런 형태로.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놀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악취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놀란 얼굴이 저마다의 사랑의 정의에 대해 설명할 때 부드럽게 풀어 지거나 수줍게 물드는 모습이다. 아직 수줍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낯간지러워 하는 사람들은 있었어도. 누군가 수줍어하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것대로 또 재밌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질문을 들으면 난 초등학교 때의 키가 작은 남자아이가 생각난다. 다른 애들에 비해 훨씬 키가 작았고, 키가 작다는 이유로 놀림도 많이 당하는 친구였다. 나도 어린 마음에 ‘키가 작은 사람은 싫어!’하고 징징거렸지만 사실 그건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떠올려보면 그 아이는 섬세한 쪽에 가까웠다. 어쩌다 함께하는 하교길에도 작은 벌레들을 밟을까 노심초사하며 걷던 아이였고, 내가 곤란해하는 상황이 오면 어른스럽게 괜찮을 거야 하고 위로해주던 아이였다. 언제부터 이 아이를 좋아했더라?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못하게 서서히 스며들어서 일상속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었던. 그 애를 생각하면 여름의 풀 냄새, 알록달록한 놀이터, 초록과 주황이 번갈아 흔들리는 놀이터 구석의 그네가 떠오른다. 누가 첫사랑이 언제냐고 물으면 이 때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초등학교때의 사랑은 얄궂고 짧기에 추억으로 남는 것이고, 나는 그 아이와 틀어지고도 몇 명을 더 사랑했다. 짝사랑. 대부분은 짝사랑이었지만. 머리 군데군데 브릿지를 넣은, 뾰족하고 짧은 스포츠컷을 하고 다니던, 밤톨처럼 까까머리로 다니던 아이들. 그리고 초등학교 때가 다 그렇듯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티가 나기 시작하면 그걸 무기로 잡은 양 놀려대는 아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뻣뻣한 표정으로 항상 “나는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아. 좋아하는 마음이 부끄러운 거니?”하고 대답했다. 어차피 몇 시간의 놀림거리가 필요하던 아이들은 쉬쉬하며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갔다. 하나 비밀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부끄러웠다.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좋아하는 마음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스스로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나 외의 다수가 조롱하는 상황에 처하다 보면 내 신념보다 그 조롱이 우선으로 생각되기 마련이니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부끄러웠다.


 사랑에 대한 나 스스로의 가치관과 정의가 명확하지 않던 시절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들도 생각난다. 허울좋은 말들로 포장해가며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다.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한다. 하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사귄 지 반나절만에 나를 사랑하던 남들. 그래서 사랑스럽던 시절의 타인들. 지금은 어디선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타인을 만나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있겠지만. 섣부르던 시절의 사랑. 집에 가는 차가 끊긴 줄도 모르고 무작정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붙잡고 집 바로 앞의 벤치에서 계속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내가 사랑에 대한 글을 자주 적을 때면 누군가 묻는 말이 있다. 왜 이렇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느냐고. 사랑을 좋아하시나 봐요. 문장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좋아한다. 나는 그렇지, 사랑을 좋아합니다. 하고 대답한다. 역시 쑥스럽고 가끔은 부끄러워 지지만 그래요, 제가 사랑을 좋아해요. 사실은 여태 해 온 제 인생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는 사랑 뿐일지도 몰라요.


 여전히 사랑앞에 부끄러울 때가 있다. 사랑이 뭔지 잘 몰라서. 아니면 사랑을 너무 잘 알아서. 다시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마음은 부끄럽지 않지만 그 마음 앞에서 바보처럼 얼어붙은 내가 부끄러웠던 것도 같다.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싶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랑의 모습은 어떤 다양한 낯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내 마음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은 부끄럽고 낯간지럽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만큼,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나도 내 사랑과 내 마음을 늘어놓고 마주하는 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 ‘그럼 본인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하는 말에 더는 열두 살 초등학생처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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