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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06. 2022

한 차례 무언가가 지나간 날

어떤 때는 밤이 너무 그리워 울었다. 

 여름보다 잠들기 힘든 가을 밤이 온 것 같다. 어제 밤에 뒤척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참 잠들기 힘든 계절이구나. 여름에도 뒤척이던 시간이 길었는데, 가을로 넘어오는 지금 더 뒤척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사실 계절 탓이 아니라 내 탓이 아닌가. 뒤척이는 시간들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나는 사실 계절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잠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계절의 온기가 사라질 때면 슬픔이 찾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열기가 사라지고 나면 찾아오는 쌀쌀한 공기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여름의 뙤약볕이 사라지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는 할 수 없는 생각이겠지. 


 팔 개월이 지나가고 계절이 세 번 바뀌는 지금 돌연 퇴사를 선언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는 아니고 다음에 뭘 할 지가 명확해져서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의 똑같은 일상이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다른 곳에서는 똑같이 무료한 일상도 터닝포인트가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보통 일터가 아니라 사적인 약속과 만남에서 오는 터닝포인트였다. 다만 여기서는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저녁이 그리웠다.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저녁을 먹고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는 풍경을 보다가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저녁이 필요했다. 저녁이 아니더라도 좋으니 내가 온전히 쉬고 다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직장의 대표님에게 적당히 정리해 전달했다. 이제 저는 저녁이 있는 삶을 다시 가지고 싶다고. 

 M은 이미 할 말이 있다는 내 말에 짐작했다고 했다. 그만두신다고 할 것 같았어요. 하고 이야기했다. 제가 낌새가 보였느냐고 물었는데 M은 그냥 웃었다. 그래도 이해해요 하고. 내 2022년의 가장 큰 운은 이 사람을 만나서 일하게 된 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를 인간적으로 존경한다. 진중한 것 같지 않다가도 진중해지고, 적당할 줄 알고. 언젠가 인터뷰에서 U가 '적당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끔은 M이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서로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 되고 있지만요. 하는 말도 잊지 않고. 


 계절이 지나가는 밤에 뒤척이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남들이 다 제 자리를 찾아가고 멋진 옷을 입고 저녁을 먹으러 오게 되는 시간 동안 내가 여전히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과도기일 뿐인 삶을 살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 그리고 작년의 내가 여전히 똑같은 고민을 했음을 떠올렸다. 그렇지. 언제나 스스로 과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그러면 아무리 고민해도 끝까지 이럴 수도 있겠다. 괜히 작년의 나도 이랬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거지. 앞으로 이러더라도 작년을, 제작년을 떠올리자. 

 여름에서 가을로 돌아가는 과도기에 나는 어디쯤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지 못하는 밤이 더는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즈음 생각하고 나니 마음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지나간 것 같았다. 오늘 밤은 그다지 뒤척이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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