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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Oct 31. 2024

맛집 탐방기(2) - 봉피양

평양냉면 편

 평양냉면, 할 말이 많은 주제라 제일 처음으로 골랐다. 평양냉면은 메밀을 갈아 낸 면에 차가운 고기 육수를 부어 만든 면 요리다. 내가 평양냉면을 처음 먹은 건 바야흐로 2년 전에 다니던 유튜브 직장에서였다. 우리는 점심에 회식을 빙자한 대표와의 식사자리를 종종 함께했다. 그게 싫었다는 것은 아니고, 좀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만족하면서 먹었던 것 같고. 다만 그는 입맛이 꽤 확고하고 먹는 속도가 느렸기에 식사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와선 그것도 추억이지만. 

 여름이 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팀 회식을 한번 하자며 대표님이 "평양냉면은 먹을 줄 아나?"라고 물었다. 먹을 줄 몰랐다. 먹어본 적도 없었고. 그리고 꽤 악명 높은 음식이지 않나. 호불호가 아주 확실하게 갈리는 식사기도 하고. 그래서 가만히 고개만 저었더니, 자기가 아주 괜찮은 곳을 소개해준다며 데려간 곳이 봉피양이었다. 내 첫 평양냉면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됐다. 

오래전에 먹은 곳이라 사진이 남아있지 않아 캐치테이블 '봉피양 강남점'의 사진을 사용했다.

 평양냉면의 첫인상은 정갈했다. 담음새가 깔끔하고 맑은 육수가 인상적이었다. 거기다 고명이 꽤 올라가 있어, 평소 먹던 함흥냉면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면도 훨씬 거칠고 두꺼워 보였다. 게다가 꽤 무게감 있는 그릇에 담겨 있어 전체적으로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표님은 국물을 한번 떠먹어보라고 했다. 뭐든 첫 만남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이때 꽤 떨렸던 것 같기도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묵직한 수저를 들어(왜 수저까지 묵직했던 건지 모르겠다) 15,000원짜리 냉면 국물을 처음으로 슥 떠먹었다. 

 누군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처음엔 그냥 그랬다. 솔직히 뭔 맛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런데 자꾸 손이 갔다. 몇 번 더 떠먹어보니 차가운 갈비탕 맛이 났다. 차가운 국물에서 고기냄새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요새 유행하는 표현처럼 "나야, 고기..."라고 하며 혀 위에 빙빙 돌았다. 자꾸 그 미묘한 맛이 궁금해서 국물을 계속 떠먹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젓가락을 들어 면을 슬슬 풀었다. 


 나는 원래 굳이 꼽으라면 얇은 면을 좋아하는 편이다. 라면도 신라면보다는 안성탕면, 안성탕면보다는 스낵면처럼 가볍고 얇은 면이 좋다. 요즘 최애는 닛신 컵라면의 토마토 칠리 누들. 면이 얇고 찰랑거려서 입에 챱챱 붙는 느낌도 좋고, 얼큰 달큼한 국물도 좋고, 커다란 건더기들도 좋아한다. 

 다시 봉피양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면이 꽤 묵직했다. 제대로 된 메밀면을 먹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면을 먹기 전까지도 솔직히 계속 의심했다. 이 밍밍한 국물이 면에 제대로 배긴 했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고명을 차례로 국물에 빠트리고, 첫 입을 떠서 면을 호로록 먹었다. 

 왜 요리 만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있지 않은가. 눈이 번쩍 떠지고, "이 맛은...!" 하면서 와구와구 남은 것까지 다 먹어치우는 것. 이때의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제대로 소화를 못 시켜서 과하게 식사를 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한입 먹자마자 허겁지겁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닝닝한 국물 맛이 슥 배인 면이 질리면 위에 얹어져 있던 고명을 함께 먹었다. 맛이 강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시큼 달달한 맛이 있는 무와 배추절임을 한입에 삭 먹으면 다시 입속이 깔끔해졌다. 삶은 계란 대신 계란 지단이 썰어 올려져 있는 것 또한 잘 어울렸다. 거친 메밀면 식감 사이로 부드러운 계란 지단이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가끔 무른 식감이 질리면 수저 위에 면을 조금 올리고, 커다란 고기를 덮은 다음에 무 절임을 올려서 한입에 쏙 넣어서 함께 먹었다. 나는 원래 수저에 탑을 쌓아 먹는 걸 좋아하는데, 식감이 재밌고 맛이 조화로워서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내가 한 그릇을 뚝딱 다 먹고 국물까지 홀짝이고 있으니 대표님이 놀란 눈을 하며 "아니 나도 혼자 다 못 먹는 양인데"라며 허허 웃었다. 나는 머쓱하고 아쉬운 마음에 계속 국물을 떠먹으며 진짜 맛있네요,라는 말만 중얼거렸다. 


 평양냉면을 봉피양에서 처음으로 먹어보기 전까지는 무슨 냉면이 한 그릇에 15,000원이나 하냐며 볼멘소리를 터뜨렸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봉피양에서 평양냉면을 처음으로 먹어보고는 다른 평양냉면 집을  정복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보고 먹으러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조금 거창하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고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은 평양냉면이 처음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딱히 즐거운 식사자리도 아니었으며, 평양냉면을 이것저것 많이 먹어본 지금 시점에서는 봉피양이 그다지 내 취향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매번 그렇듯이 '처음'이라는 경험이 얼마나 위대한지. 나는 한동안 사비 오천 원을 더해가며 여름 내내 봉피양만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취향이 아닌 것 치고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아직도 가끔은 봉피양은 맑은 육수와 계란 지단이 생각난다. 따지고 보면 봉피양의 평양냉면이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는 처음이라는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래 처음은 항상 강렬하고 아주 순수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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