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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Nov 18. 2022

7시에 퇴근하면 다들 무얼하세요?

10시 출근? 좋아요. 7시 퇴근? 글쎄요.

하루 8시간 근무 기준, 10시 출근 7시 퇴근. 10시 출근은 좋지만 7시 퇴근은 과연 좋은 것인가? 언제나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7시 퇴근하면 밥은 언제 먹고 집안일은 언제 하며 책은 언제 읽으시는지. 7시 퇴근은 1인 가구에게 너무 가혹한 시간이다. 


9시 출근이 너무 빡세서 10시에 출근을 하는 건데, 10시 출근은 그럼 안 빡센가? 덜 빡셀 순 있지만 안 빡세진 않다. 


10시 출근이 출근을 드라마틱하게 편하게 만들어주진 않지만, 7시 퇴근은 아주 드라마틱하게 삶의 질을 나쁘게 만든다. 출퇴근 시간이 짧은 사람들은 크게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보통 30분~1시간 정도 걸린다고 치고 집에 오면 8시. 저녁을 먹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것도 차려져 있다는 가정하에 퇴근 후 씻고 정리하면 딱 8시쯤 밥을 먹는 것이고, 직접 준비한다면 더 늦은 시간에 밥을 먹게 된다. 이건 저녁밥이 아니라 야식이다. 설거지하고 그 외의 집안일 좀 깨작거리다가-깨작거린다고 표현했지만 낮은 강도의 리소스가 오랜 시간동안 투입된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자야할 시간이 어느새 다가온다. 내일을 위해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고, 휴대폰을 조금 보다보면 어느새 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있고 내일 아침 나는 또 피곤하게 눈을 뜬다.


자기개발 이야기를 해볼까? 지하철, 또는 혼자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나는 강제성을 부여해야 가까스로 해내는 타입이라 학원엘 가야한다.  YBM 강남점 기준으로 영어회화반을 검색하면 가장 늦게 시작하는 반이 19시, 1분의 지체없이 퇴근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학원으로 향해야한다. 6시에 퇴근을 해야 적당히 허기를 채우고 복습을 하고 학원 진도를 따라간다. 아침 학원 시간 역시도 9시 출근자에 맞춰 새벽 수업은 8시 30분쯤 마치지만, 그 다음 수업은 9시 50분에 마친다. 부지런히 학원에서 내려가 10분안에 (강남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겨울에도 땀을 쏟으며 뛰어가야한다.


게다가 겨울, 겨울은 굉장히 예의가 없는 계절이다. 서울 강남구 기준 9월 3일부터 다음달 4월 7일까지 7시 퇴근자보다 해가 먼저 퇴근한다. 무려 8개월씩이나! 12월은 특히 어마무시하다. 7시 30분이 지나서야 뜨면서 5시 30분 이전에 지는 아주 예의가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해가 지면 어서 어서 집에 들어가서 내 가정을 돌봐야하는데, 해가 지고도 1시간 30분을 넘게 밖에 있어야하는 것이다. 나는 출근을 해서 점심을 먹고 퇴근을 했을 뿐인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외출모드로 맞춰둔 보일러는 기분만 냈고, 집은 싸늘하고 깜깜하다. 모든 의지가 떨어진다. 


7시 퇴근은 집안일을 완벽하게 끝내주는 존재가 있어야 '워라밸'이 맞는 것이다. 긴 근무시간은, 결국 가사노동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8시간 일하는 걸 기준으로 삼았을 때, 나는 8시 30분 출근 5시 30분 퇴근을 선호한다. 애매하기 때문이다. 출근길은 다소 붐비지만 퇴근길은 비교적 여유롭다. 예의없는 태양 녀석이 나보다 일찍 퇴근할때는 2달밖에 없다. 이 출퇴근을 해본결과, 해가 진다고 바로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퇴근길이 어둡다라고 느끼는건 동지 전후 밖에 없었다. 학원을 가기전에 급하게 밥을 '때울' 필요도 없고, 퇴근해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할 시간까지 생긴다. 8시간 근무는 똑같은데, 나의 마음가짐과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완전 달라진다.


하지만 이래저래 아무리 생각해도 8시간 근무는 너무 길다. 가사노동 시간까지 포함하면 -가사노동은 평일 가사노동시간(여+남)/2 로 계산하였다- 2시간 추가근무. 서울 평균 출퇴근시간을 여기 얹으면 플러스 1시간 40분. 오로지 노동을 하는데 쓰는 시간이 11시간 40분인 것이다.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시간은 빠진거니, 실로 어마어마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10시 출근, 좋을 수 있다.  7시 퇴근? 글쎄. 10시 출근이 복지가 되려면 6시나 그 이전에 퇴근해야한다. 적어도 밥을 먹고 소화시키고 잘 수 있는 시간은 줘야하는거 아닌가? 이러니 역류성식도염이 낫질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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