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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Jan 04. 2023

정말 별 걸 다 신경쓰시네!

혼자 살면서 생긴 '별 걸 다 신경쓰는 것들'

독립 후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지다보니, 불편한 것들이 생겼다. 독립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다. 다들 서로 서로 견뎌가며, 혹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무던하게 사는 거겠지? 걱정도 조금 앞선다. 이런거 말하고 나면 생각도 안 하던 사람들이 묘하게 생각하면서 별 걸 다 신경쓰시네! 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혼자 살며 생긴 '별 걸 다 신경쓰는 것들.'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01. 티비 소리


집에 오면 무의식적으로 티비를 켜지만 이 놈의 티비소리는 왜이렇게 신경스이는 지 모르겠다. 나는 볼 게 없으면 티비를 끄는 스타일도 아니다. 어떻게든 뭐든 틀어서 소리를 집에 채운다. 일반적인 예능이나 드라마일때도 있지만 아르떼 티비를 틀어 클래식으로 채울 때도 있고 이비에스를 틀어서 고등학교때도 보지 않았던 과학 수업으로 집을 채울 때도 있다. 만약 남이 본다면 얼마나 꼴값(!)일까. 분명 부모님한테 배운 것임이 확실한 티비 보는 습관인데 다른 사람이 보는 티비 소리는 왜 그렇게 시끄럽게 들리는지. 부모님이 보고 있음에도 나는 리모컨을 들어 소리를 줄인다. 그런데 이 음량 조절도 애매하다. 한 칸 내리면 생각보다 크고, 두 칸을 내리면 생각보다 작다. 그냥 리모컨 들어서 할 것 없이 눌리다가 내려놓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부모님의 미디어 소비 패턴이 바꾸셔서 두 분다 각자 유튜브를 보신다. 그럼 나는 소리를 빽 지르며 잔소리를 한다. 티비는 티비대로 떠들고! 각자 유튜브 보고있고! 뭐라도 좀 꺼! 하지만 혼자 있는 나도 티비를 틀어놓고 유튜브 쇼츠를 돌려볼 때가 있어서 깜짝 놀라곤 한다.


02. 나체 샤워 나체 내 방


왜요? 나체로 샤워하는 사람이 이상한가요? 나체로 로션 바르는 사람이 이상한가요? 나체로 티비 보는 사람이 이상한가요? 혼자 살 땐 아무도 없으니 부길라에 익숙하다. (부길라는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인데 드라마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로 밥을 먹거나 돌아다녀서 집에서 옷을 벗고 있는 걸 부길라라고 부르는, 아주 오래된 인터넷 밈이다. 사실 나도 관용적으로만 쓰다가 오늘 처음 알았다.) 방에 붙어있는 욕실을 쓸 때야 크게 신경쓰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써야할 할 때는 물에 젖은 손을 바로 장갑에 끼는 느낌이 든다. 좀 더 뽀송하게 또는 편하게 있다가 옷을 입고 싶은데 습기 가득한 욕실 안에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온다. 씻는 시간보다 몸을 말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게다가 머리는 다 말리지도 못한 상태로 옷은 전부 입고 나오는게 너무 이상하고 답답하다. 욕실에서 방까지 호다닥 걸어와서 문을 닫고 습기 제거를 시작하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여행을 가면 이것은 더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욕실에서 옷을 다 입고 나오는 것과 더불어 욕실을 쓰는 습관때문에 눈에 띄는 거슬림들이 생긴다. 예쁜 말로 불편하다, 거슬린다, 내가 예민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축축한 몸에 뽀송한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은 정말 불편해 '뒤질' 지경이다. 


03. 화장실 소리는 생각보다 잘 들린다. 


최근 나혼자 산다에서 박나래님의 락페스티벌을 참관하는 두 분을 보면서 세 사람 모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주파수가 다른 소리이기 때문에 음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물도 틀고, 여러가지 처치를 한 것 처럼 보이지만 냄새는 정말 극복하기 힘들었을텐데, 저 세 사람은 무던하게 극복한 걱정이 앞선다. 나였다면 아마 내 방으로 뛰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스타트를 끊었기때문에 용기있게 저 상황에서 페스티벌을 열었을 지도 모른다. 저 소리를 들었더라면, 다른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화장실을 가기가 쉽지가 않다. 

나는 최근 들어서 본가에 가면 화장실 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밝혔다. 같이 살고 있을 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따로 살고 난 후에는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밖에서 생각보다 잘 들리는 것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냐면요, 나도 딱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저절로 알게 되며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은 오히려 괜찮다. 하지만 앞으로 볼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생리현상이고, 다른 사람의 락페스티벌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의 락페스티벌은 괜히 거슬린다. 지금 나는 본가에 사람이 있으면, 특히 화장실 옆 방에 사람이 있으면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또 나만 예민하지.


적다보니 혼자 살며 예민해진 것들만큼 무던해진 것들도 있는 것 같다. 티비 소리가 아니라 직접적인 소리에 예민해서 집에서 한참 떨어진 기찻길에 첫 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잠을 깨던 나는 어떤 소리에도 5초 안에 잠이 들어 내 알람 소리에만 깨는 기적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장착했다. 약간의 불편함도 거슬려했던 완두콩 공주였지만 지금은 가시방석 위에서도 잔다.  다음 번엔 혼자 살며 알게된 무던해진 나의 모습을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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