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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Nov 27. 2016

캠프 엑스레이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꼭 봐야 하는 영화

사실 요즘 우리나라의 사정이 말이 아닌 만큼 세계 최대의 정치쇼라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묻힌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그 나라도 이상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서는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제45대 미국 대통령 취임이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막말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입니다.    

특히 IS 등 이슬람 테러 집단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물고문은 물론 더한 것도 필요하다는 민주국가의 대통령 후보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발언을 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물고문은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언급하기도 싫은 단어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CIA국장에 물고문 찬성론자인 마이크 폼페오 하원의원을 내정하고 법무장관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그토록 폐쇄하려고 했던 관타나모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는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변호인 접근과 묵비권 차단을 주장했던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을 내정해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서설이 길었는데 지금 소개하려는 영화가 바로 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영화 소개에 앞서 우선 문제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어떤 곳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론을 통해 가금씩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가둔 수용소 정도로 소개가 되는 관타나모 수용소는 놀랍게도 미국의 적성국인 쿠바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이 쿠바로부터 관타나모를 얻은 건 1903년부터입니다. 당시 쿠바는 스페인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역시나 오지랖 넓은 미국이 개입해서 쿠바를 돕고 그 대가로 관타나모에 해군기지를 설치한 거죠.    

암튼 이 관타나모가 유명해진 건 부시 정권에서 이슬람 테러 용의자들을 재판도 없이 이 곳에 강제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라는 책을 쓴 이슬람계 미국 변호사 마쉬비 룩사나 칸에 따르면 이 곳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테러와 거리가 먼 평범한 이슬람인들이라고 합니다. 현상금에 눈 먼 이슬람인들이 이웃들을 무차별 미군에 고발했기 때문이죠.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캠프 엑스레이’(Camp X-Ray, 2014, 감독 : 피터 새틀러)의 주인공 에이미 콜 이병(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눈에 비친 알리(페이만 모아디) 역시 평범한 마을 아저씨였는지도 모릅니다.



인구가 수백 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플로리다의 시골 마을 무어 헤이븐 출신인 콜은 신병 훈련을 마치고 관타나모 수용소로 배치를 받는다.    

누군 코너링 실력이 탁월해 운전병으로 꿀을 빨았다고 하지만 아프간에 차출돼 목이 잘리거나 총알을 맞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수용소에서 포로들을 감시하는 건 ‘꿀보직’ 아닐까?    

수용소에서는 감금되어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절대 포로(prisoner)로 부르지 못하게 했다. 대신 억류자(detainee)라고 부르게 했다. 포로로 대우하면 제네바 협약을 준수해야 때문이다.    

또한 억류자들과 어떠한 사적인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했으며 개인적인 정보 제공도 금지했다. 콜은 직급이 이병(private)이었으나 상병(corporal) 계급장을 달고 억류자들을 감시했다.    

때때로 억류자들은 단식으로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이럴 때면 코를 통해 강제 급식이 공급되었다. 억류자들은 자연광도 들지 않는 좁은 방에서 24시간 감시당하며 죽을 수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콜은 수용소에 배치되어 말 많은 억류자 알리를 만난다. 2년 동안이나 해리 포터 8권을 찾았다는 알리는 독일의 브레멘 출신으로 대학까지 나온 엘리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을 알 수 없으니 콜을 그저 블론디(blondie)라고 부르는 알리는 미군은 너무 책을 안 읽는다고 은근히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과시했다.    

우리 정권의 인사들을 봐도 알 수 있듯 먹물이 결코 도덕성과 비례하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먹물 든 사람을 일단 믿고 보는 경향이 있다. 처음엔 당신이 무슨 한니발 박사인줄 아느냐고 비아양거리던 콜도 언제부턴가 알리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며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 우정이 싹트는데.


저는 ‘캠프 엑스레이’를 보면서 오래 전인 전두환 정권 초기 설치되었던 삼청교육대가 생각나더군요. 깡패 소탕한다고 무차별로 사람들을 잡아들였지만 알고 봤더니 억울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사실 깡패라고 해서 정당한 절차도 없이 잡아들이면 안 되는 겁니다. 전두환에 앞서 박정희도 5.16 직후 이런 일을 벌인 걸로 아는데 필리핀의 두테르테 전에 우리나라에는 박정희와 전두환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부시 정권 하에서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고 트럼프는 오바마가 금지했던 고문도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미국이 이러면 북한이나 필리핀 같은 나라에 뭐라고 못하는 거죠. 우리나라 역시 정권에 따라서는 이상한 일들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 동안에도 광장에서는 촛불이 타오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촛불의 의미를 그저 자신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은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모르는 것은 촛불이 그저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백만 촛불의 의미는 그저 대통령 한 사람 물러가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찾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담한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미래의 정권들에 대한 강한 경고입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는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이상한 일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위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못 살겠다 바꿔보자’고 해놓고는 백만장자 내각을 구성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아이러니를 저질렀습니다.    

전 이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은 기정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촛불 이후 우리 국민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캠프 엑스레이’는 부시 정권의 모순을 고발하면서도 트럼프 체제의 미국에 경고를 던진 영화입니다.(물론 영화는 트럼프가 떠오르기 전에 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봐줘야 하는 영화인데 아쉽게도 그만 개봉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전 좋아하는 여배우인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출연했다고 해서 찾아보았는데 기대하지도 않은 대어를 낚은 느낌입니다.    

201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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