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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ug 16. 2023

공간의 이어달리기

월악산 유스호스텔

공간의 이어달리기


중간에 이어받는 것보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쉬운 일들이 있다. 유행이 지난 옷을 멋지게 고쳐 입는 것은 새 옷을 사는 것보다 어렵고, 이미 한 번 완성된 요리를 더 맛있게 하는 일은 도무지 오리무중인 일이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나 이전의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의도를 가지고 구현해 놓은 공간을 바꾸는 일은 빈 땅에 새로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세심함을 요하고,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단점을 고치려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장점마저 희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악산과 충주호 사이, 제천의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1999년 건립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다 2021년 리노베이션 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숙소가 되었다. 예전처럼 월악산 유스호스텔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덧대었을까?




더하기와 빼기의 결정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총 3개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산의 모습을 본 뜬 것처럼 1층보다는 2층이, 2층보다는 3층이 점점 줄어들어 정면에서 보면 양끝이 계단식으로 쌓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지붕도 박공 지붕으로 덮혀 있어, 측면에서 보면 3개의 다른 지붕이 켜켜이 겹쳐 보이게 된다. 또한 중앙에는 뾰족한 첨탑 같은 유리 천장이 모자처럼 씌워져 있는데, 이곳이 내부에서는 3개 층을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실이 위치하고 있다. 전면에 있는 객실의 발코니들은 모두 중앙이 볼록 튀어나와 있는 형태이다.



월악산 유스호스텔의 외관은 욕심 없이 소박하게, 그러나 아주 세심하게 만져졌다. 어떤 건축적인 면들이 이곳의 장점이었는지를 오래도록 관찰한 시선이 분명 있었다. 앞서 말했던 건물의 큰 틀은 모두 예전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특징들을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객실의 창들이 교체되었고, 객실 사이의 칸막이가 목재로 신설되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충주호를 바라보는 발코니의 난간들이 모두 유리 난간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외관보다는 내부에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서 만나게 되는 로비는 이전의 낮은 천장고를 확 높였지만 언뜻 아늑하고, 2층의 높은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햇살 덕분에 빛이 충만하다. 여느 다른 호텔들과 달리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정면에서 만날 수 있는 계단인데, 3층 건물인 탓에 엘리베이터가 없이 이 계단으로 사람들은 모두 층을 오르내린다. 중앙에 공간을 두고 둘러서 올라가는 원형 계단에, 계단을 감싸는 묵직한 난간까지 더해져 오묘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객실로 들어서면, 조심스러웠던 리노베이션은 태도를 달리하여 적극적으로 공간을 변화시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한쪽으로 화장실이 위치하고 곧장 침대가 보이는 일반적인 객실이 아니라, 화장실을 현관 앞에 두어 풍경을 가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의 모든 구조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들어, 객실을 찾은 손님들은 짐을 잠시 내려놓고 몇 걸음 걷고 나서야 낮은 단차와 그뒤의 충주호, 그리고 월악산의 산새를 눈에 담을 수 있다. 현관에서 걷게 되는 그 몇 걸음은 침대와 화장실 문을 숨김과 동시에 공간에 대한 경험을 증폭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객실의 종류가 한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객실은 유럽의 유스호스텔을 모티브로 삼아 여행자들을 위한 2층 침대가 구성되어 있다. 도미토리 형식으로 6인실 객실로 운영되어, 친구들 여러 명과 함께 월악산 유스호스텔을 간다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객실이다. 또한 101호는 레노베이션 이전의 객실을 그대로 살려 넓은 거실과 화장실이 있어, 반려견이 동반 가능한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낯섦과 익숙함을 선물처럼 주는 곳


유스호스텔이라는 공간은 낯설지 않다. 한 학기에 한 번, 수련회를 가는 날이면 두근대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반 친구들과 짝을 지어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소곤대며 밤에 몰래 깨어 있기도 하고, 촛불을 들고 부모님 생각에 괜히 눈물을 훔치곤 했던 때의 배경은 모두 유스호스텔이었다.



그런데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마냥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딘가 익숙한 공간의 구조이지만 새로 덧대어진 공간의 요소들이 새롭고 낯설어, 마치 외국의 어딘가로 훌쩍 떠나온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월악산 유스호스텔의 새로운 브랜딩과 굿즈들이, 그리고 유스호스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책자들과 리플렛들은 모두 월악산 유스호스텔만의 색을 입고 있어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또한 환경을 고려하여 제로웨이스트 제품으로 어매니티를 제공하고, 저녁과 아침에 마실 수 있는 차를 제공하는 등 지금 시대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월악산 유스호스텔에는 두 개의 머릿돌이 존재한다. 정면의 출입구에서 오른쪽에 궁서체로 쓰인 머릿돌에는 1999년도의 날이 적혀있고, 왼쪽에는 조금 더 멋들어진 월악산 유스호스텔의 로고가 영문으로 적혔다. 중앙의 계단과 양쪽의 경사로가 왠지 1990년대의 시간과 2020년대의 시간이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기분 탓일까.




샘터 2023년 7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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