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커피컴퍼니 플래그십스토어
부산 동래구 수안동에 위치한 수안커피컴퍼니 플래그십스토어는 오픈을 했던 2018년도부터 가보고 싶었던 카페였다. 일본의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외관도, 건물을 감싸고 있는 푸른 조경들도 모두 그림처럼 보였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정했다.
지금껏 약 5년 동안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기회를 노렸지만, 번번이 방문에 실패했다. 수안커피가 휴무였거나 아니면 부산 일정이 너무 바빴거나. 올해 늦여름, 드디어 때가 맞아 수안커피컴퍼니 플래그십스토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줄도 서지 않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만 있으니 오히려 좋다.
커피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되는 독특한 향과 맛을 지녔다. 커피의 맛을 설명하기 위해 바리스타들은 다른 과일과 음식들에 그 향과 맛을 비유한다. 때로 초콜릿 향이 난다고, 딸기나 리치의 향을 느낄 수 있을 거라며 커피를 건넨다. 입 안에 머금은 커피는 내뱉는 숨 안에서 초콜릿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고, 베리 류의 상큼한 과일 향을 맛보게도 해줬다. 향에 대한 설명은 모호하게 들리곤 하지만, 코끝을 스쳐 지나는 향을 느낄 땐 또 매우 명확하기도 했다.
수안커피컴퍼니 플래그십스토어의 모호하지만 똑 부러지는 외관은 커피의 향을 닮아있다. 어디가 문인지, 창문은 도대체 있는 것인지 멀리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멀리서 보아서는 전시관 같기도, 아주 작게 축소된 경기장 같기도 하다. 용도는 쉽게 알 수 없어도, 형태는 아주 명백히 인지된다. 원형의 공간이 땅에 내려앉아, 일부만 살짝 천을 들어 올리듯이 가볍게 들어 올려져 있다. 수안커피의 건축이 건축보다는 아주 큰 조각이나 미술작품처럼 보이는 것은 건축을 건축으로 인식하게 하는 문과 창 같은 요소들이 모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잘게 쪼개어진 금속의 길쭉한 판들은 서로 연결되어 원형의 공간을 그려낸다. 방문객들은 마당을 구획하고 있는 울타리의 작은 문을 지나 곱게 심긴 조경 사이의 오솔길을 통해 카페의 출입구를 찾아 걷는다. 땅과 떠올라 있는 벽 사이, 틈으로 들어서면 마치 비밀통로를 찾는 것처럼 건물의 곡면을 따라 걷게 되고, 그제야 카페의 출입문이 보인다. 출입문과 창문을 꽁꽁 가려둔 것은 혹 바깥 도시의 소음과 공해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한 꺼풀 보호막을 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사무실에 출근을 하면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뜨거운 물을 받고,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기 시작하면 사무실에는 조금씩 커피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곱게 갈린 원두를 드리퍼에 담아서 뜨거운 물을 천천히 떨어뜨린다. 원두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최대한 얇은 물줄기가 원두 위로 골고루 떨어지도록 한다. 원두는 조그만 거품들을 내면서 부풀고, 그러다 숨이 죽으면 다시 동그라미를 그 위로 그려준다.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한 방울들이 모여 커피 한 잔이 된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 데에도 이토록 자잘하고 수고스러운 순서가 필요한데, 커피 원두를 만드는 과정이야 오죽할까. 수안커피컴퍼니 플래그십스토어에서는 커피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방문객에게 투명하게 보여주고자 공간 중앙에 커피 로스팅을 위한 기계들을 두었다. 로스팅 공간은 곡면 유리를 사용해 공간을 구분 지었지만, 고객공간과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고객공간은 건물의 외곽 곡면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벤치가 전부이다. 구획도 되어있지 않고, 방문객들은 기다란 벤치의 영역 안에서 원하는 위치를 골라 일렬로 앉게 된다. 방문객이 어디에 앉든 커피콩을 볶고, 볶아진 커피콩을 갈아내고, 갈린 커피 가루를 뜨거운 액체로 내려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바라보게 되어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공간 구조로, 공간은 커피에만 집중한다.
수안커피컴퍼니 플래그십스토어는 다시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소수의 방문객만 받을 수 있었던 작은 공간을 넘어, 더 많은 방문객들이 머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팩토리 앤 스토어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올해 연말부터는 한 층 더 넓고 높게 확장된 공간에서 수안커피를 새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다음 부산행 여행이 기다려진다.
샘터 2023년 12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