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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an 06. 2024

눈이 오던 날

흑백으로 사진 찍기


사진은 얄궂게도 날씨가 궂은날 찍기 좋다. 내 몸은 괴롭지만 사진은 좋다. 


아주 더운 날, 아주 추운 날. 아주 더운 날의 햇빛은 사진 속에서 그렇게 지독해 보이지 않는다. 여름의 사진들은 오히려 청량한 맛이 있다. 카메라를 든 나의 이마에는 땀이 계속 흐르고 있더라도. 겨울이라고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주 추운 날은 시야가 아주 멀리까지 깨끗하다. 시원한 사진을 얻으려면 영하 5도 아래로 떨어지는 추운 날이 좋다. 마찬가지로 얼어버린 손가락은 사진에서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은 어떠한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도시의 풍경은 평소와 달라진다. 비가 오면 땅의 아스팔트는 빛을 더 깊고 멀리 반사한다. 우산을 쓴 사람들은 또 조금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눈이 오면 도시의 여러 자잘한 것들은 모두 흰색으로 덮여버린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굵은 눈송이들이 떨어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처럼 멋이 있다. 필터를 먹인 것처럼 도시를 거칠게 가려버리기 때문일까.



눈이 오던 날, 테니스 가는 길에 카메라를 들고나갔다. 매주 지난 길인데도 눈이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풍경은 달라진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걷는 사람들이 또 귀여워 보인다. 걷기에 불편한 날일 텐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는 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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