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 후드 Dec 15. 2021

쓸데없는 선물의 쓸모

"선물을 돈으로 줘선 안 됩니다."

 한때 인스타그램이나 TV에서 "가장 쓸데없는 선물"을 서로 준비해서 주고받는 것이 유행이라고 들었습니다. 가장 '창의적인' 선물 콘테스트를 보는 마음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걸 어디다 써?'라는 반응에는 '참 신기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건 너무 낭비 아니야?'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처음 듣는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한편 어디선가 본 거 같은 기시감 또한 들었습니다. 곰곰이 며칠 정도 그 기시감을 음미하는 과정을 글로 쓰는 게 어떨까 합니다.



 처음부터 입장을 밝히자면, 저는 “쓸데없는 선물 주고받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쓸데없는 선물 주고받는 분들이 요구하시지 않았지만, 제멋대로 변호인을 자처하겠습니다. 저는 “쓸데없는 선물유행이 오래 지속하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선물은 원래부터 쓸모가 거든요. 선물은 절대 유용해서는  됩니다. “실용적인 선물  자체로 모순입니다(이런, 벌써 결론을 써버렸네요).



 시간을 잠시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쓸데없는 선물 유행하기 전에는 ‘선물을 돈으로 주는 풍습 퍼져가고 있었습니다. 돈은 “쓸데없는 선물”과 반대로, 가장 실용적인 선물입니다. 받은 돈을 가지고 선물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것들 혹은 원하는 것들을 구매할  있습니다. 이보다  실용적이면서 맞춤형 선물은 없을 겁니다. ‘선물을 돈으로 그냥 주는  뭐한걸이라는 감정의 진입장벽을 넘는다면, 주는 사람은 선물을 고를 시간과 노력을 아낄  있습니다.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가 행복한 선물이네요!!!



 ‘선물을 돈으로 주는 풍습’은 과거의 선물들을 훑어보자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항상 명절의 선물 필수리스트에는 “종합선물세트”가 있습니다. 물론 괄호 치고 스팸, 참치, 올리브유 등을 담은 박스라고 불러야 겠죠. 이 선물들은 혼자 사는 자취생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대가족까지 모두에게 있어야 할 생활 필수품입니다(몸매관리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과 비건 분들은 아니실 수도 있지만). “종합선물세트”는 그야말로 ‘실패할 수가 없는’ 선물이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실패는 저의 모든 지인들이 스팸만 줘서 제가 한 달 내내 스팸을 먹어야 하는 강제 황제 다이어트(?)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스팸을 한 달 내내 먹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네요. 기왕 이런 김에 스팸을 구워먹거나, 볶음밥에 넣거나, 김치찌개를 만들거나, 하와이안 스팸 무스비를 만들어서 스팸 요리의 대가가 되는 것도 꽤 괜찮은 기회입니다.



 “종합선물세트”는 선물이 실패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묘책입니다.  선물을 주는 날은 수능 인간관계 영역 시험날입니다. 그 문제지는 이렇게 쓰여 있죠, “당신은 상대방의 취향과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계신가요?”. 그래서 선물은 여느 시험문제들처럼 어렵습니다. 타인의 관심과 취향에 귀기울이는 건 품이 많이 들거든요. 가끔은 자신도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도 모르는 게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원하는 선물을 직접 듣지 않고 눈치, 관찰력, 기억력을 총동원해서 헤아려야 합니다. <셜록 홈즈>처럼 마음의 궁전을 들어가 기억을 끝까지 짜내거나, 주위 사람들을 심문(?)해서 정보를 얻는 등 선물은 추리 영역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번거로운 과정과 쓰라린 실패를 피하는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죠. 그 대안이 바로 실용성입니다. 대부분 필수품으로 구성된 “종합선물세트”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실패 제로, 미션 성공입니다.



  "종합선물세트"로 스팸, 참치, 올리브유를 선택하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지 쓸 수 있는 편의성과 다재다능한 용도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선물입니다. 실용적인 선물을 교환하다보면, '그렇다면 필수품인 식품보다 사람의 취향을 타지 않고, 실수하지 않는 선물이 무엇일까?'라고 묻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입니다. 먹을 것을 당장 원치 않는 사람을 고려한다면, 선물은 그저 '물건'으로는 되지 않죠. 처음은 백화점 등 매장 안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그 다음 어디서든 결제하고 유통될 수 있는 '돈'으로 넘어갑니다. 어찌 보면 '현금 선물'은 "종합선물세트"의 당연한 종착역입니다.




 네이버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한때 샐러리맨의 전설이었지만, 대기업 회장으로부터 토사구팽당한 넘버 투(정복동)가 천리마마트라는 한직에 좌천당하면서 시작합니다. 넘버 투는 회장에 대한 배신감과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허탈감으로 천리마마트를 거대한 빚더미로 만들기 위해 일반적인 마트라면 하지 않을 파격적인(정신 나간) 마케팅을 선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천리마마트를 흥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이 만화의 코미디입니다. 또 하나는 그 '마케팅의 내용'이 범상치 않게 사회를 돌려까는 맛이 있어서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마트 속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격적인 마케팅들 중 하나가 바로 '설명절 현찰세트'입니다. 곱게 명절선물세트 박스에 포장된 현금 9만원을 11만원에 파는 상품입니다. 모두들 이런 게 팔리겠냐 했지만, 11만원 상당의 '9만원 현찰세트'는 불티나게 팔립니다. 이 에피소드는 대형마트들이 가격에 비해 부실한 상품을 준비해서 화려한 포장으로 폭리를 취하는 세태를 풍자합니다. 그렇게 몰래 폭리를 취하느니 차라리 대놓고 적당한 폭리를 취하겠다는 뻔뻔함이 웃음포인트였죠.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실용적인 선물"의 최종진화형을 슬며시 보여준 미래이기도 합니다. "실용적이면서도 누구에게도 실패하지 않는 선물을 고르자."로 선물을 찾는다면, '설명절 현찰세트'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입니다.



 '설명절 현찰세트' 정반대를 고른다면,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꼽을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난하지만 금슬좋은 부부는 각자 소중한  하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지는 은시계를, 아내는 비단처럼 고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죠.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자. 아내는 남편의 은시계를 돋보이게  시곗줄을 사고자 자신의 고운 머리카락을 팔았습니다. 크리스마스 당일 짧은 머리의 아내는 남편에게 시곗줄을 건넸지만, 남편의 은시계는 이미 없었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에  어울리는 머리핀을  거였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은시계를 팔아서 말이죠. 남편은 아내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끝납니다.



 어린 시절  책을 처음 읽고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도 운이  좋을  있지' 하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가장 비실용적인 선물 주고받았으니까요. 대신 그들은 각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내어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비실용적이지만, 가장 품이 많이  선물이죠. <크리스마스 선물> 부부는 받는 사람의 효용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비용으로 선물의 가치를 판단했습니다. '' 입장이 아닌 '' 입장으로 선물의 가치를 미루어 짐작합니다.  마음이 갸륵하고 감동적이죠. 안쓰럽기도 하고요.




 앞서 말했듯이, 사실 선물은 쓸모가 없는  좋습니다. 선물의 쓸모가 있을수록, 선물의 느낌은 죽습니다. 갑자기  멀리 손을 들어, “그럼 산에 있는 돌멩이를 들고 와서 선물로 하면 되나요?”라고 물으실 상상의 독자 분이 보이는군요.  대답은 "아니요, 선물은 당연히 다이아몬드 반지로 해야죠." 입니다. 선물의 쓸모가 있다는 ,  선물을 '선물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할  있다는 뜻입니다. 스팸처럼 먹거나, 올리브유처럼 요리에 쓴다거나, 상품권처럼 물건을   있는 등의 부가적 기능이 있으면 선물이  능력을  발휘할  없다는 뜻이죠. 선물은 다재다능한 맥가이버 칼이면, 그렇게 선물은 아닙니다. 이상적인 선물은 오직 "선물  자체" 용도로만 쓰여야 합니다. 그래서 선물이 선물교환에 쓰이지 않는다면, 현실 세계에선 쓸모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돌멩이여선 안 됩니다. 쓸모가 없지만, 선물이 돌멩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여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다이아몬드가 '무지하게 비싸기' 때문입니다. "너무 너무 비싼데, 정작 현실에서 쓸모가 없는 것", 그게 선물입니다. "선물 그 자체"의 쓸모는 '현실 세계에서는 쓰잘데기 없는 물건을 기어이 비싼 값을 주고 사는 행동'에 있습니다. 그래야만 선물이 "선물 그 자체"의 용도로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선물이 쓰잘데기 있다면, "선물 그 자체"의 용도는 실용성에게 그 힘을 빼앗겨 분산되고 가려지게 됩니다.



 "자, 봐봐. 내가 바깥 세상에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되지만 얻기 힘든 물건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어, 오직 너에게 선물하려고 말이야. 내가 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선물의 메시지는 이런 것입니다. "선물 그 자체"의 용도는 현실과 다른, 이 관계의 소중함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 용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과의 관계와 다른 관계를 우리 둘이 맺고 있다. 관계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쓸모 또한 차별화를 두는 겁니다. 평범한 쓸모로 설명되지 않는, 비싼 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선물은 '당신과 나의 관계는 평범하고 일상적이지 않습니다.'를 믿고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Vogue>, Madonna(마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