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막내의 '황금 시절'을 보내며
처음 정국의 싱글이 나왔을 때는 가사의 수위 때문에 조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실 BTS는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너무 모범적인 모습인 데다, 특히 그룹의 ‘황금막내’ 정국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미지가 영원히 그룹의 귀엽고 어린 막둥이 느낌이 강해서였달까. 아무튼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night after night I'll be fucking you right 나는 매일밤 너를 (따)먹을거야’ 수준의 수위를 구사하는 그의 싱글에 다들 적잖이 놀랐던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그의 그런 변신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되어 더 열광하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내가 조금 더 놀랐던 건 두 번째 싱글 ‘3D’ 이후에 정규 음반 <GOLDEN>을 들었을 때 그 완성도 때문이었는데, 각각의 곡들이 좋았던 것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가 청춘남녀 간 사랑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초반의 곡들이 처음 호감을 갖고 무턱대고 들이대는 사랑을 말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진지해진 감정을 풀어놓기도 하고 이내 많은 첫사랑이 그렇듯 서로 헤어지고 미워하고, 잊으려 하지만 오히려 더 그리워하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하나의 서사를 앨범에 풀어놓았다.
사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애 서사의 앨범은 윤종신의 <우愚, 1996>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앨범은 타이틀 곡 ‘환생’만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좋다. 특히 1번에서 9번 트랙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하나의 연애가 시작되고 끝나는 이야기로 쓰여 있어서 초반에는 과한 설렘으로 시작되지만 곡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결국엔 이별의 고통을 함께 경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너의 어머니’와 ‘아침’, ‘일 년’으로 이어지는 곡들의 가사를 통해 당시 내 이별의 감정을 많이 이입해서 듣던 기억이 있다.
정국의 <GOLDEN>도 그랬다. ‘Standing next to you’를 넘어서 ‘Hate you’, ‘Too sad to dance’와 ‘Shot glass of tears’를 듣다 보면 나 또한 다시 한번 실연을 당한 것 같은 고통 속을 느끼며 이별의 서사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배치된 ‘Seven’을 다시 들으면 처음 정국이 싱글로 이곡을 노래하던 그 느낌과는 전혀 딴 판의 노래를 듣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 가득한 노래이지만 과거 행복했던 한 시절을 회상하는,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질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너무 슬픈 이별의 노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주일 매일, 매시간을 너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가사는, 이 앨범을 모두 들은 후에는 도리어 너무 슬프고 허전한 마음을 전달한다.
I'm still in love, for what it's worth 난 여전히 널 사랑해,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Maybe hating you's the only way it doesn't hurt 어쩌면 너를 미워하는 게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라
(정국, 'Hate You' 중에서)
So last night, I went to the club 그래서 어젯밤에 클럽에 갔어
Had a couple too many, threw up 너무 많이 토했어
Now, everybody's laughing at me 이제 모두가 나를 비웃어
'Cause I'm way too sad, way too sad to dance 왜냐면 난 춤을 추기엔 너무 슬퍼
(정국, 'Too Sad to Dance' 중에서)
I'm not the same as before 나는 예전 같지 않아
I don't feel anymore 더 이상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Tell me, am I ever gonna feel again 다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Tell me, am I ever gonna heal again 내가 다시 치유될 수 있을까?
Got a shot glass full of tears 눈물로 가득 찬 술잔을 들어
Drink, drink, drink, say cheers 마셔, 건배할게
(정국, 'Shot Glass of Tears'중에서)
문득 이 앨범이 정국 자신의 성장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BTS의 막내로 불같은 20대를 보냈다. 연습생 시절과 BTS 멤버로서의 10년은 그야말로 열정과 무모함의 연속이었고 모든 성취들이 마치 첫사랑처럼 순수함과 설렘의 경험들이었다면 이제는 잠시 솔로 앨범을 뒤로한 채, 무대로부터, 아미라는 팬들로부터, BTS의 멤버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이별의 시간을 갖게 된다. 물론 그는 더 성장하고 단단해져서 돌아올 것이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사랑의 기호라고 할 수 있는 풋풋함과 무모함의 정서보다는 좀 더 세련되고 성숙하고 온전한 방향으로 그의 스탠스는 넘어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이야기 같은 이 앨범 <GOLDEN>은 그의 빛났던 청춘의 한 시절 서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끝)
https://www.youtube.com/watch?v=2jEckKEzu90